[필연] 만월의 불꽃놀이

2025. 1. 6. 16:08·TRPG/필연

 

 여름의 어느 날, 시일 고등학교에서는 문화제가 열립니다. 그런데 이 문화제, 어째 호락호락하지 않은걸요? 쏟아지는 축제 준비 위원회 업무, 끊이질 않는 불운한 사고, 심지어 갑자기 찾아온 낯선 손님까지!

 과연 우리는 무사히 축제를 끝마칠 수 있을까요?

약칭 ‘만월꽃’ 플레이로그 백업

 

KPC 조원필 / 철재
PC 연나기 / 제리

 

연나기:
rolling 1d100
(
18
0
)
 
=
18
 
─────── ✷ ───────
 
조원필:img
 
KPC 조원필 PC 연나기
 
Written by 청서
 
이미지
 
─────── CHAPTER 도입 ───────
 
 
“나는 너와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부디 나를 기다려줘.”
 
 
“내가 ■■를 기다렸던 것처럼.”
 
어렴풋하게 낯선 목소리가
 
머리맡에 앉아 자장가를 불러주듯 나직하게 들려옵니다.
 
목소리는 소음에 묻혀 차츰차츰 사라져버립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그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주위가 아주 어수선합니다.
 
앳된 목소리가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니까,
 
 ✷ 정신력 판정 ✷  
 
연나기:
정신
기준치: 79/39/15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야가 탁 트이고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만,
 
목소리는, 연나기에게 피하라는군요.
 
뭘?
 
고개를 들면 위에서부터 추락하는
 
육중한 크기의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층 위에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당신을 내려다보는 두 명의 동급생이 보입니다.
 
연나기:⋯⋯!
 
 ✷ 민첩 판정 ✷  
 
연나기: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쿵!
 
육중한 소리에 연이어 무참하게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연나기는 가까스로 반사신경을 발휘해
 
추락하는 간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눈을 굴려 주변을 살펴봅니다.
 
연나기:헉⋯⋯ 으, 헉⋯⋯. 뭐야?! (다리에 힘이 없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거지.)
 
 
동급생:나기야 괜찮아!?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학생들은 연나기의 주변을 둘러싸고
 
말을 걸며 옷을 털어줍니다.
 
 
동급생:병원에 안가봐도 괜찮겠어?
 
연나기:⋯⋯ 됐어, 조금 까진 것 빼곤 멀쩡해.
근데⋯⋯ 아, (부축해 달라는 듯 당연하게도 손 내밀었다.)
 
 
동급생:정말 놀랐어.. 너 하마타면 큰 일 날뻔했다니까! (손 맞잡아주며 부축해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간판이 떨어진 위층을 올려다보니,
 
작고 검은 그림자가 날쌔게 자취를 감춥니다.
 
연나기:⋯⋯? 방금 뭐 있지 않았어? (인상 찌푸리며 위 쪽 가리킨다.)
 
 
동급생:응? 그런 건 못봤는데..
정말 미안해! 달고 있던 간판이 갑자기 그쪽으로 떨어질 줄은….
 
처참한 몰골로 망가진 간판은
 
당장 기간을 맞추기엔 촉박해 보입니다.
 
사고를 친 당사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잔뜩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시일제는 당장 내일이니까요.
 
연나기:하, 아무튼 됐고. 너넨 어떡하게. 지금부터 밤 새도 모자랄 것 같은데⋯⋯.
 
거리 곳곳에는 홍보 팜플렛이 붙어 있습니다.
 
연나기는 제비뽑기에서 꽝을 뽑아 축제 준비 위원회에 선발되었습니다.
 
축제를 준비하며 즐거운 일도 분명히 있었지만,
 
잦은 회의와 육체적인 노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축제 한 달 전부터 계속되는 회의와 시험공부, 동아리 업무…….
 
연나기의 몸과 정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죠.
 
잠시 정신이 멍해진 것도 과로가 원인일 게 뻔합니다.
 
 
동급생:...그러게! 우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나기 너도.. 제발 도와주면 안돼!? 네가 도와주면 빨리 끝날 것 같기도한데..
 
연나기:(알고 있다. 도와주면 빨리 끝날 거라는 걸. 그도 그럴 게 망가진 간판을 비스무리하게 복구하는 건 원래 하던 작업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위원회장:안~돼! 나기 계속 고생했단 말야.
 
연나기:(다만⋯⋯ 조금 피곤하다. 아니, 많이. 한숨 푹 쉰다.)
 
 
위원회장:나기는 좀 쉬어도 괜찮아. 내가 얘네랑 같이 간판 만들게.
 
연나기:⋯⋯정 그러면 복잡하게 생긴 데만 좀 도와줄게. 이따가 도안 보내, 그거라도 괜찮다면.
 
 
위원회장:너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
방금도 위험한 일이 있었고.
 
연나기:사고랑은 별개니까. (난 잠깐 쪽잠 좀 잔다~ -라고 말하며 걱정스러운 말 뱉는 위원장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동급생:나기야! 그럼 기다릴게..!
 
그래요, 내일이면 드디어 축제의 시작입니다.
 
몸을 돌리면 축제 준비가 끝나가는 학교의 정경이 눈에 담깁니다.
 
큰 사고가 날 뻔했지만,
 
그 부분만 제외하면 준비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합니다.
 
풍선과 꽃으로 예쁘게 장식된 깃발이
 
초여름 바람에 나직하게 흔들립니다.
 
<시일제> 라는 또렷한 세글자가 일그러졌다 펴지며
 
어느덧 축제가 성큼다가왔음을 알립니다.
 
간판 마무리 작업이 끝나면,
 
연나기는 무거운 가방과 지친 몸을 끌고 귀가합니다.
 
아름답게 물들던 하늘이
 
색과 빛을 차츰 빼앗기고,
 
창문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올 무렵이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이가
 
조곤조곤 대화하며 당신의 곁을 지나갑니다.
 
 ✷ 듣기 판정 ✷ 
 
연나기:(피곤하다. 오늘따라 시달린 기분인데. 와중에 대화 소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귀 쫑긋하고 듣는다.)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아, 피곤해.
 
 
초등학생 1:있지, 그거 알아?
 
 
초등학생 2:뭔데?
 
 
초등학생 1:우리 언니가 그랬는데, 해가 지는 시간에는 그림자가 제일 길어지잖아?
그때 요괴가 나타나서 그림자를 훔쳐간대.
 
 
초등학생 2:정말? 그림자를 빼앗기면 어떻게 되는데?
 
연나기:⋯⋯ (애들이란. 그런 생각이나 한다.)
 
 
초등학생 1:그건 몰라!
 
 
초등학생 2:무서워…….
빨리 집으로 가자!
 
요괴라니,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연나기:해가 지는 시간?
 
그런 건 전부 아이들을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부모들의 책략이 분명합니다.
 
연나기:(⋯⋯멀리 노을 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지금이잖아.
 
─────── CHAPTER ⼀⽇ ───────
 
 ✷ 관찰 판정 ✷ 
 
연나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두침침한 골목을 가로질러가던 도중,
 
연나기는 흐릿한 가로등 아래에서 낡은 종이 상자를 발견합니다.
 
연나기:(상자?)
어젠 저런 거 없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살핀다.)
 
상자 안에는 대충 구겨 넣어진
 
묘한 생김새의 동물이 있습니다.
 
뿔이 난 도마뱀이라니.
 
심지어 꼬리가 길어요...
 
이런 도마뱀이 왜 여기 있을까요?
 
도마뱀은 어딘가 다친 듯
 
힘없이 눈을 감은 채 쌕쌕거리고 있습니다.
 
피부에는 마른 피가 말라 붙어 있습니다.
 
간단한 응급처치는 된 것 같은데,
 
주인의 손을 탄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연나기:(보통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지 않아? 웬 도마뱀⋯⋯.)
 
그 흔한 이름표라거나
 
‘잘 키워주세요’ 라는 문구조차 없습니다.
 
상자 내부는 조촐합니다.
 
먹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바닥에 대충 깔린 퍼석퍼석한 신문지는
 
도저히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다친 동물을 이곳에 이렇게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요?
 
더군다나 이 길은 밤이 늦으면 취객이 다니기도 한다던데…….
 
연나기:⋯⋯뭘 봐. (도마뱀이랑 눈 마주치자 괜히 말 건다.)
큼. (괜히 처량해 보이니 건 시비였다. 그림자 져서 잘 보이지 않았어. 이대로면 죽을 것 같은데, 이 녀석⋯⋯.) 지금은 괜찮아도, 밤엔 추워질 텐데⋯⋯.
너, 내가 여기로 지나갈 거 알고 여기서 쓰러진 거지. (그러니까 듣는 이 없음에도 괜히 말 걸어댄다. 손가락으로 도마뱀 머리 가볍게 쓰다듬다가⋯⋯)
에잇, 몰라. (상자 째 들고 집으로 간다. 아빠는 이런 거에 관심 없으니까 후다닥 방에 들고 가면 되겠지. 그런데 도마뱀은 어떻게 보살피는 거야?)
 
연나기가 상자를 번쩍 들면 이상하게 무겁습니다.
 
마치 동물의 몸무게가 보기보다 훨씬 더 나가는 것 처럼요.
 
집까지 무사히 들고 가기 위해선 추가로 근력 판정이 필요합니다.
 
 ✷ 근력 판정 ✷ 
 
연나기:? 왜 이렇게 무거워. 뭐 또 다른 게 들어있나?
근력
기준치: 62/31/12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으헉⋯⋯.
 
연나기는 세 발자국마다 상자를 내려놓고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합니다.
 
주위에서 이상하게 봐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연나기:아니⋯⋯ 그래봤자 도마뱀이잖아?!
하⋯⋯ 이게 다 오늘 피곤해서 그래. 원랜 안 이런다고, 진짜로. (그러니까 자꾸 누구한테 말 거는 건데?)
 
아빠가 자릴 비우셔서 다행입니다.
 
또 이상한 동물을 데리고 왔다며 잔소리를 들을게 뻔하니까요.
 
마침내 연나기는 집에 도착합니다.
 
자기 전까지 바라는 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연나기:헉, 허억⋯⋯ 하, 아니⋯⋯. 오늘 왜 이렇게 힘들지?! (무릎 간신히 짚고 헥헥거린다.)
(괜히 아무 죄 없는 도마뱀 노려보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 상자를 방 구석에 놓고, 곤히 자고 있는 도마뱀을 살피려 쪼그려 앉았다. 그 다음으론 스마트폰을 키고, 구글 서치 바에 검색을 시도한다. '도마뱀 살리는 법.')
온도를 내려야 한다고?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조금 받아 도마뱀의 얼굴에 뿌린다.)
 
도마뱀은 움찔거리더니 혀를 내밀어 자기 얼굴을 할짝거립니다.
 
연나기:오, 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아요.
 
연나기:야야, 기운 더 차려 봐. (이름은⋯⋯) 샐리! (즉석에서 지었다.)
물 이거, 먹어야지. (손가락으로 머리 조금 밀어 물 마시게끔 유도했다.)
샐리야아.
 
샐리는.. 곤히 잠들었는지 당신의 손길에도
 
물을 먹지 못합니다.
 
연나기:헉! 죽었나?! 안 돼! (단단히 착각했다.)
야야, 일어나아⋯⋯! (계속 건드린다.) 아니지, 일단 피부터 닦아야 돼. (손수건 하나 화장실에서 적셔와 귀찮게도 건드려 댔다. 일단은 구조하려는 목적이 크지만⋯⋯.)
 
도마뱀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기에게 몸이 닦이다
 
팔 다리를 꼼질 거리더니 다시 미동이 없습니다.
 
연나기:안돼애-!!!!
 
심장 부근에 손가락을 대면,
 
다행히 뛰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나기!
 
연나기:(아, 자는 거구나. 그제야 안심한다.)
(하⋯⋯ 한 시름 덜었다. 그래, 쉬게 해 주마. 상자는 방에 두기엔 더러우니 일단 치우고, 도마뱀은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는다. 푹신하니 여기가 더 쉬기엔 좋겠지-파충류 지식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자. 저녁은 피곤하니 거르고, 욕실에서 목욕을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잘 자라, 연샐리. (이불 조금 덮어준다.)
 
정말 힘든 하루였어요.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그대로 머리부터 시트 위로 녹아 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잠에 빠지는 데에는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멀어지는 의식 너머에서부터 익숙한 소리가 들립니다.
 
 ✷ 듣기 판정 ✷ 
 
연나기:으응⋯⋯.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닙니다.
 
듣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피로가 가십니다.
 
이윽고 당신은 완전히 잠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연나기는 꿈을 꿉니다.
 
자상하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꿈입니다
 
반딧불이가 가득한 곳에서
 
연나기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거닐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연나기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는 연나기의 팔에 방울이 달린
 
팔찌를 걸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인연을 소중히 하렴, 나기야.
만일 네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무조건 반딧불이 빛을 따라가라.
그 빛을 따라가면 말이지…….
 
─────── ✷ ───────
 
연나기는 섬뜩한 냉기에 반사적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연나기:헉.
 
시간은 늦은 새벽,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범한 가위와는 다릅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완전히 압박당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눈동자와 입뿐입니다.
 
연나기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본다면,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짐승의 두 눈과 마주칩니다.
 
연나기:(무⋯⋯ 뭐야? 으, 으으⋯⋯.)
 
거대한 존재감,
 
당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괴물의 눈은
 
마치 살아있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괴물의 형형한 눈빛이
 
연나기를 한순간에 집어삼킬 것처럼 번뜩입니다.
 
연나기:⋯⋯ ⋯⋯⋯⋯ ⋯⋯⋯⋯⋯⋯⋯⋯⋯⋯ ⋯⋯⋯⋯ (눈 꽈악 감는다. 가위 눌릴 땐 야한 생각 하랬어, 야한 생각, 야한 생각⋯⋯!)
 
 ✷ 이성 판정 ✷ 
 
연나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그 순간,
 
내내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이 창문 내부로 비쳐 들어옵니다.
 
물이 차오르듯,
 
실내에 푸르스름한 달빛이 번져나가 차츰차츰 시야가 밝아집니다.
 
연나기의 뺨 위로 가느다란 빛줄기가 내려옵니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 있던 인영은 놀란 듯
 
주춤,
 
뒤로 물러섭니다.
 
몸을 옥죄던 감각이 흩어지고,
 
따갑도록 퍼지던 살기가 사그라지면,
 
그림자 속에서 사람이 걸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연나기:초, 총각 귀신이냐? 설마!?
 
긴 회색 머리카락과..
 
뿔.
 
연나기:(뿔⋯⋯?)
 
도마뱀 같은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두 사람의 첫 만남입니다.
 
 ✷ 관찰 판정 ✷ 
 
연나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니, 사람이 맞는 걸까요?
 
기이한 힘을 쓰는 게,
 
꼭 마법사 같기도 합니다.
 
생긴 건 코스튬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 같지만요.
 
연나기:누, 누구세요? (겁먹었는지 슬금 뒤로 물러난다.)
 
조 원필:난,.. 조원필이야.
내가 사는 곳의 멸망을 막기 위해 대표로 파견된 사자야.
 
연나기:⋯⋯.
 
조 원필:이곳에 온 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회복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거든.
눈을 떠보니 낯선 곳에 있어서 근처에 있던 널 반사적으로 제압해버렸어. ...미안해.
 
연나기:(⋯⋯잠자코 듣는다. 어째 말이 이어질 수록 심드렁한⋯⋯.) 아~
이거 꿈이네. (그대로 이불 덮고 다시 눕는다.)
 
조 원필:야아.
꿈 아니거든?
일어나.
 
연나기:가위 눌리면 야한 생각, 야한 생각⋯⋯.
꺼져라, 귀신아!
(눈 감아버린다.)
 
조 원필:...
네 이름은 뭔데?
 
연나기:나 알아. (입만 살았다.) 내 이름을 알면 세 번 불러서 날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거지⋯⋯.
 
조 원필:... 저승사자가 이렇게 생겼겠냐?
 
연나기:⋯⋯? (흘긋, 한쪽 눈만 떠서 그제야 네 얼굴 자세히 본다.)
오, 씨⋯⋯. 잘생겼는데?
(⋯⋯가 아니고.) 아, 샐리! 샐리 어딨어?!
 
조 원필:샐리가 누군데?
 
연나기:(제 머리맡 더듬거린다.) 내가 오늘 주워 온 도마뱀!
너 때문에 도망갔잖아! (이젠 무섭지도 않은지 똑바로 노려본다.) 얘 어디갔어⋯⋯.
 
조 원필:도마뱀?
나..?
내가 샐리인가본데..
 
연나기:⋯⋯.
재미 없거든?
 
조 원필:난 작은 형태로도 변신이 가능하거든.
보여줄까?
 
연나기:보여줘 봐, 그럼. (어째 행동에 서슴이 없는 게 여전히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 원필:(손가락 딱, 튕기면 당신이 아는 샐리로 펑! 변한다.)
(의기양양한 도마뱀 모습이다. 이제 믿냐는 듯 고개 들어 나기 쳐다본다.)
 
연나기:⋯⋯ ⋯⋯!
(그대로 들어 낯 가까이한다.) 뭐야, 진짜 너야?!
 
조 원필:(끄덕끄덕끄덕)
 
연나기:말도 알아듣다니⋯⋯ 넌 천재가 분명해!
 
조 원필:(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연나기:⋯⋯ 아오! (화들짝 놀라며 멀어진다.)
 
조 원필:여튼..... 난 이계에서 왔어.
머지않아 멸망을 맞이할 거라는 신탁이 내려왔고,
막을 방법을 우리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어서..
신목의 문을 열고 이곳, 인계까지 오게 되었다~ 이 말이지.
 
 ✷ 지능 판정 ✷ 
 
연나기:
지능
기준치: 82/41/16
굴림: 8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학교 부지 뒷산의 신목을 생각해냅니다.
 
거대하고 영험한,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기운의 신목.
 
그 주변에서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자자했죠.
 
설마 조원필은 귀신일까요?
 
연나기:⋯⋯커흠, 그럼 연샐리⋯⋯ 가 아니고, 조원필? (씨, 기껏 이름도 지어주고 성도 붙여줬더니.)
 
조 원필:연샐리는... 뭐야 진짜?
전에 키우던 강아지나 도마뱀 이름인가?
 
연나기:내 성이거든?
아니라고! 내가 지어준 거야.
 
조 원필:네 이름이 뭔데.
 
연나기:연나기. (불만스럽다는 듯 삐죽인다.)
 
조 원필:...음. 그래. 나기야.
설명하면 길지만...
 
연나기:그래서⋯⋯ 네가 다른 세계에서 왔는데 막을 방법을 여기서 찾겠다, 이 말이지?
나는 그런 널 도마뱀인 줄 알고 주워온 거고?
 
조 원필:정확하네.
 
연나기:(딱히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네? 주먹 쥐며 네 앞에 갖다댄다.) 파이팅!
 
조 원필:중간 상황을 덧붙이자면,..
내가 함께 이 세계에 사자로 온 일행이 몇 있었는데 '추격자'를 피하다 흩어졌단 말야.
나랑 같이 화이팅 해줄래?
 
연나기:⋯⋯네?
 
조 원필:동료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도와주라.
 
연나기:내가 뭘 어떻게 도, 도와주는데.
나 피곤해.
 
조 원필:이 곳에 잠시 머물면서.. 같이 조사해줘
 
연나기:나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인간인데⋯⋯.
 
조 원필:너 시일 고등학교 학생이지?
교복 걸려있는 거 봤어.
 
연나기:어, 어떻게 알았⋯⋯ 아.
 
조 원필:시일 고등학교라면 신목이 있는 곳이잖아,
분명 단서가 있을 거야.
원래 조사도 그 부근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기도 하고.
 
연나기:⋯⋯ (끄응. 어째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예감이⋯⋯.)
하⋯⋯. (한숨 쉰다.) 그래, 나도 학교를 가긴 해야 하니까.
장소가 마침 겹쳐서 도와주는 거야! 연샐, 아니 조원필.
(근데 뭘 어떻게 도와주냐?)
 
조 원필:그냥~. 나랑 학교 같이 돌아주면 된다니까.
동료들도 분명 근처에 있을거야.
내가 학교 내부를 모르니까..
같이 다니자는 거지.
 
연나기:⋯⋯알겠어. 근데 그렇게 다니게? 나 교복이 하나밖에 없는데⋯⋯ 선생님한테 불어봐서 헌 교복이라도 얻어와야 하나.
 
조 원필:아~. 교복? 그게 문제였어?
그런거라면 괜찮아.
 
연나기:(정신을 차츰 차리니 아까의 막 뱉은 발언들이 신경 쓰인 모양이라) 그리고⋯⋯ 아까 했던 말은 미안. 생각해 보니 너한텐 심각한 일이었을 텐데⋯⋯ 근데 난 진짜 꿈인 줄 알았어. 현실감이 없잖아!
 
조 원필:인간은 요괴를 잘 안 믿잖아.
놀랄 만도 하지.
넌 그래도 착하네, 내가 죽을 줄 알고 네 집까지 데려와줬잖아.
 
조원필은 벽에 걸린 교복을 보더니
 
손가락을 한 번 튕깁니다.
 
조원필이 입은 옷은
 
시일 고등학교의 교복으로 변합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 있는 조원필은
 
생각보다 무척 평범해서,
 
정말 같은 학교 학생 같습니다.
 
연나기:⋯⋯ ⋯⋯ 진짜 적응 안 되네.
(엄지 척.) 완전 감쪽같은데? 좀 양아치 같긴 하지만.
 
조원필:양아치..같다고?
(얼굴 문질..)
 
연나기:뭔 말인지 모르나?
 
조원필:좀 더 순한 인상이 좋아?
 
연나기:⋯⋯아니,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냥 내 감상인데. 머리 길고 한복 같은 거 입을 땐 몰랐는데 나처럼 꾸미니까⋯⋯. (크흠, 헛기침한다. 솔직히 잘생겨서 지나가다 한 번쯤은 돌아볼 인상이긴 했으니.) 뭐, 나쁘지 않아.
 
조원필:하하, 그래도 내일 이렇게 있으면 친구처럼 보이려나..
내일 그럼.. 학교에서 수업 듣는거야?
 
연나기:내일은 축제야.
수업이 있었다면 돌아다니기 좀 곤란했겠지만⋯⋯ 마침 자유시간이네. 넌 운 좋은 거야!
 
조원필:잘됐네!
축제라니,... 우리 이계에도 축제가 있어.
인계 축제는 처음인데, 우리랑 다르려나?
 
연나기:대신, 조금 시끄럽고 사람 많을 건 각오해야 돼. (이어지는 말엔 눈 끔뻑였다.) 너네도 축제가 있어? 어떤 축젠데.
 
조원필:그냥~.. 도마뱀 구이 팔고. 신점도 보고.
불꽃놀이도 보는거지.
 
연나기:⋯⋯너 도마뱀 아니냐?
 
조원필:나?
...
이래보여도 이무기야.
 
연나기:⋯⋯ 내가 아까 들었던 게 이무기라고?
 
조원필:들고온거야?
무거웠을텐데..
(걱정.......)
 
연나기:(에~라이, 그래. 더 이상 의문을 갖지 말자.) 뭔가 우리랑 비슷하네. 나도 나중에 놀러갈 수 있으려나~⋯⋯ 이번 일만 해결되면. (흘긋, 네 쪽 본다.)
 
조원필:그러엄. 얼마든지 와.
 
연나기:'멸망'을 꼭 막아야겠네.
 
조원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보려고.
너한테 축제 구경도 시켜줘야하니까.
 
연나기:좋은 자세야. 뭐든 할 수 있다,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고.
 
조원필:그럼.. 난 어디서 자면 되는거야?
(멀뚱..)
 
연나기:⋯⋯ ⋯⋯.
(아깐 내 침대에서 자긴 했는데⋯⋯) ⋯⋯요괴가 잠도 자냐?
 
조원필:당연하지.
나도 못자면 막...짜증나거든?
 
연나기:아⋯⋯.
 
조원필:(슬금 네 침대 걸터 앉는다.)
아님 여기서 같이 잘까?
 
연나기:(아까 야한 생각 하던 침대⋯⋯;) 이, 이⋯⋯.
안 돼! (벌떡 일어난다.)
 
조원필:잠만 자는 건데?
 
연나기:⋯⋯ (왜인지 뺨이 조금 붉어졌다.) 요괴는 원래 그렇게 거리낌이 없냐?!
 
조원필:친구들끼리 그냥.. 붙어서 자고 그러잖아?
인계는 조금 다른가..
 
연나기:그⋯⋯ 렇긴 한데⋯⋯! (끄응⋯⋯)
(네가 너무 취향의 얼굴로 생긴 탓이야. 침대 끄트머리에 찰싹 붙었다.) 대신 붙지 마. 거리를 유지하자고. 알았지?
 
조원필:응, 알겠어.
(최대한 멀찍하게 떨어져서 연나기 쪽으로 몸 돌린다.)
이 정도면.. 충분해?
중간에 깨서 피곤하겠다.
내일은 내가 깨워줄게. 몇시에 깨워줄까?
 
연나기:(얼굴 공격 그만둬⋯⋯.) ⋯⋯ 일곱 시. 아빠가 그 때 밥 하고 출근하니까 그 즈음에⋯⋯. (아, 피곤했나. 긴장이 풀려선지 눈이 차츰 감긴다.)
 
상황이 정리된다면 다시 잠에 듭니다.
 
내일, 아니 오늘은 대망의 축제 일이니까요.
 
─────── CHAPTER ⼆⽇ ───────
 
원필은 나기를 불러 깨웁니다.
 
연나기:으응⋯⋯. 더 잘래. (잠 투정은 유구하다. 짜증스럽게 몸 돌린다.)
 
조원필:안돼, 학교 가야지.
(나기 위로 올라타더니 흔들어 깨운다.)
원래 잠 투정이 심한가?
 
연나기:으으, 흔들지 마아⋯⋯! (미간 좁힌 채로 이불 뒤집어썼다.)
 
조원필:지각해도 되는거야?
밥은. 밥은 먹고 가?
 
연나기:⋯⋯ ⋯⋯
 
조원필:내가 뭐라도 해둬야 하나.. (여전히 올라탄 채로 고민..)
 
연나기:(밥은⋯⋯ 아마 되어 있을 거다. 뭐라뭐라 웅얼거린다.)
 
조원필:나기야아.
 
연나기:왜애⋯⋯.
 
조원필:준비해 얼른.
(아예 나기 위에 드러눕는다. 꾸우욱..)
 
연나기:무, 무거워어어⋯⋯! 뭐야 ⋯⋯아아⋯⋯. (반쯤 든 정신으로 이불 걷자 가까이서 눈 마주친다.)
⋯⋯ (딸꾹.)
 
조원필:깼다. (씩 입꼬리 올려 웃는다.)
좋은 아침.
 
연나기:(차츰 붉은 색으로 물드는 얼굴⋯⋯) 나, 나와아아----!!!!!!!
 
조원필:고막 터지겠네!
성질 하고는..
(쩝 소리 내며 물러선다.)
목청을 보니 잠은 확실히 깬 것 같고.
 
연나기:(간신히 상체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왜, 왜 올라타는데! 진짜!
 
조원필:안깨길래,
죽었나..하고 들여다봤어.
일으켜줄까? (손 내민다.)
 
연나기:(끄응, 본인 잠 투정 심한 건 알아서 더 반박하지 않고 얌전히 손만 뻗었다.) 어.
도마뱀 구이 먹는다는 걸 보면⋯⋯ 너도 밥 먹지? 주면 먹을래?
 
조원필:응, 무슨 밥 있는데?
나 안 가리고 다 잘 먹어.
(손에 힘주어 끌어 당긴다.)
 
연나기:읏차. (네 팔 잡고 슬 기댔다 떨어진다.) 몰라? 그냥 쌀밥에, 반찬은 뭐⋯⋯ 나물이랑 김치랑 있나? 아빠가 뭐 해 놨을 지 모르겠네. (문 열고 부엌으로 간다. 따라오라는 듯 뒤돌아 손 흔든다.)
 
조원필:맛있겠다. 아버지는 요리 잘하셔? (나기 뒤 따라 성큼 걸어가더니 팔 꾹 잡는다.)
 
연나기:우리 아빠? 엄⋯⋯ 솔직히 잘 모르겠어. (도우미) 아주머니가 하신 게 더 맛있어. (큭큭, 장난스럽게 웃으며 화답하듯 네 허리 감싸는가 싶더니 식탁 앞으로 주욱 밀었다. 밥 한 그릇 더 떠서는) 여기 앉아, 숟가락이랑 젓가락 줄게. 쓸 줄 알지?
 
조원필:아, 아주머니가 따로 계셔?
나기 집은 부자구나..(!)
엉. 나 젓가락질도 잘할 수 있어. (얌전히 자리에 앉아 너 움직이는 거 관찰한다.)
 
연나기:잘 사는 편이긴 해. (부정은 않는다.)
(너 보란듯이 젓가락 들곤 쇠 소리 내며 맞부딪힌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듯 한)
 
조원필:(젓가락 들더니 똑같이 따라한다. 봐, 잘하지?)
 
연나기:오, 좀 하는데?
 
조원필:이게 나물인거지? (반찬 집어들더니 밥 와구 퍼서 입에 밀어 넣는다.) 맛있네!
 
연나기:자~ 그럼⋯⋯ (엑, 먹는 태 보더니 살짝 당황한다.) 잘 먹네⋯⋯ 편식하나 안 하나 보려 했더니. (흠, 그러엄~⋯⋯ 슬쩍 검은 콩자반이 담긴 접시를 네 쪽으로 밀었다.)
많이 먹어. (^^)
(남기면 뭐라 하시거든. 그러니까 네가 나 대신, 많이⋯⋯)
 
조원필:싫어하니까 나 주는거지.
 
연나기:⋯⋯
 
조원필:(눈치 백단..)
 
연나기:⋯⋯ 아냐. 맛있으니까 많이 먹, 으라고. (아오 혀 씹었다.)
 
조원필:뭐 뭐 싫어하는데?
내가 다 먹을게.
맛있는 건 너 다 먹어.
 
연나기:(솔깃) 진짜?
 
조원필:엉, 난 크게 안가려서.
 
연나기:(막상 또 순순하니 괜히 미안⋯⋯) 아냐, 이것만 먹어주면 돼. (그 외 좋아하는 계란말이도, 고기도, 햄도 다 네 쪽으로 밀어줬다. 많이 먹어라⋯⋯.)
 
조원필:(먹는 속도도 제법 빠르다! 이것저것 집어먹더니 젓가락 내려놓고 너 기다리고 있는다.) 인계 학교, 정말 기대된다.
이런 옷도.. 음, 어색하네. 어울려?
 
연나기:(배고팠나 보네.) 별로? 완전 네 옷 같애.
넥타이만 좀 더 단정하면 될 것 같은데? 이리 와 봐.
 
조원필:응? (일어서더니 네 옆에 앉아 넥타이 내어준다.)
어떤식으로 하면되는데?
 
연나기:(고개 슬 기울여 넥타이 끄트머리 잡고 안 쪽의 줄을 조금 더 밑으로 당겼다.) 이렇게 하면 모양이 나와. 하긴, 거기선 이런 거 입을 일 없었으려나⋯⋯.
좀 태가 살지? (뒤 쪽의 거울 보게끔 몸 살짝 기울여주며)
 
조원필:넥타이라는 개념이 잘 없어서.
역시, 이런 것도 평소에 하는 사람이 해줘야 잘 되는구나.
 
연나기:그러엄. 학교에선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어라. 돌발행동 할 까 두렵다⋯⋯.
 
조원필:난 생각보다 얌전한데~.
이 접시들은 내가 치울게. 준비 다하면, 나한테 말해줘.
 
연나기:(생각보다⋯⋯ 편하잖아?!) 그래, 그럼. (마저 준비하려 화장실 들어간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학교로 출발합니다.
 
문화제가 열리는 오늘은 주말이지만,
 
축제 준비 위원회인 연나기는 게으름을 부릴 여유가 없습니다.
 
연나기:⋯⋯생각보다 침착하네? 너.
 
조원필:응?
어떤 면에서?
 
연나기:아니, (비밀스러운 이야기니까 찰싹 붙어서 귓가에 대고⋯⋯) 인간 학생들 이렇게 모여 있는 거⋯⋯. 처음 볼 거 아니야. 안 신기해?
 
조원필:아, 자동차는 진짜 봐도 봐도 적응 안돼.
뭐~.... 음.
어제 실컷 봐서, 신기하진 않아.
 
연나기:아, 그래? (쩝. 순순히 물러난다.) 아무튼, 내가 생각보다 좀 바쁘거든? 학교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순 있긴 하지만 위원회라 그렇게까지 자유롭지가 않아. 좀 정신없을 수도 있어.
 
조원필:그럼 내가 도와줄게.
 
연나기:에, 어떻게?
 
조원필:그야, 난 요력도 있으니까.
 
연나기:(오⋯⋯?)
 
조원필:다 방법이 있지? (윙크!)
 
연나기:(팅- 무형의 별이 이마에 부딪혀 떨어진다.) 너⋯⋯ 원래 성격이 좀 그러냐?
 
조원필:내 성격이.. 어떤데.
거리낌없는거?
 
연나기:⋯⋯ 조금 끼? 를 부린다고 해야 하나.
 
조원필:음..
 
연나기:요괴라 그런가? (도대체 뭐가.)
 
조원필:뭐 이쁨 받는 비결이지.
별로야?
 
연나기:이래서 요괴한데 홀린다는 말이 있는 건가⋯⋯ (중얼거린다.)
⋯⋯아니!
 
새파란 하늘, 여름의 습기가 맨 살 위로 달라붙습니다.
 
자전거를 탄 동급생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는 연나기를 발견하곤
 
페달을 밟는 속도를 늦춰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의 곁에 있는 낯선 이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네요.
 
 
동급생:나기, 안녕!
전학생? 아는 애야?
 
연나기:어, 안녕. (원필을 대하던 태도와는 달리 조금 더 새침하고⋯⋯ 얌전한 모범생. 도련님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질문에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며 넘긴다.) ⋯⋯뭐, 비슷해. 축제 구경시켜 주려고.
 
 
동급생:아아~. 못보던 얼굴이라서. 나중에 보자! 위원회장이 불러서.. 먼저 갈게.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페달을 밟아
 
앞으로 쭉 미끄러지듯 나아갑니다.
 
조원필은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연나기:⋯⋯
 
조원필:...낯 가리는 거야?
 
연나기:⋯⋯ 아니거든.
 
조원필:나랑 있을 때랑 느낌이 달라서.
 
연나기:학교에서 그렇게 오두방정 떨 순 없잖아. (대충 이미지 관리 한단 뜻인 것 같다.)
 
조원필:나한테선 괜찮고?
내가 편한거지, 그럼?
 
연나기:(그러게, 네가 도마뱀-이무기-이어서 일까, 아직도 새벽의 일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서일까. 왜지, 이렇게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음대로 생각해.
 
조잘거리다 보면 금방 학교가 보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몰려드는 인파를 보니 축제의 인기가 실감 나네요.
 
시일제,
 
흔들리는 깃발 위의 또렷한
 
세 글자가 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요괴를 반깁니다
 
익숙한 관리 부스로 들어가면,
 
축제 위원회장이 연나기에게 위원회 목걸이를 나눠줍니다.
 
축제 첫날 연나기의 업무는 전체 부스를 돌며
 
이상이 없나 확인하고, 일손이 부족하면 돕는 것입니다.
 
목걸이와 함께 담당 부스가 적힌 차트가 지급됩니다.
 
차트에 기재된 모든 부스를 돌고
 
빈칸에 전부 도장을 받으면 끝나는 간단한 일입니다.
 
 
위원회장:나기~. 어제는 잘 들어갔어?
밤 8시에는 캠프 파이어와 포크댄스가 시작되니,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얼른 끝내고 돌아와 줘!
 
지금부터 연나기는 마술 연구부, 요리부, 미술부, 연극부 부스를 돕니다.
 
어디부터 갈까요?
 
연나기:(원필에게 설명하듯 차트 보여준다.) 이거 이렇게 네 개 돌 거야. 특별히 먼저 구경하고 싶은 데 있어?
 
조원필:음...나는,
마술 연구부.
 
연나기:요괸데도 마술이 궁금해?
 
조원필:응. 인간이 하는 마술은 어떤 건가 해서.
 
연나기:(네 둔갑 실력에 비하면 별로 뭐⋯⋯ 재미없을 텐데.) 알겠어. (마술 연구부로 널 안내한다. 인파에 밀려 잃어버리지 않게끔⋯⋯.)
 
마술 연구부의 부스는 벌써 손님맞이를 시작했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여러 장의 트럼프 카드와 가랜드로 화려하게 꾸민 교실은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교실의 좌측에서는 풍선 아트가,
 
우측에서는 마술 공연이 한창입니다.
 
연나기:흠~⋯⋯ 뭐, 나쁘지 않네, 준비 열심히 하더니.
 
연나기의 목에 걸린 위원회 목걸이를 본 부장이 아는 체합니다.
 
 
마술 연구부 부장:안 그래도 위원회 측에 사람 좀 보내 달라고 하려 했는데!
기왕 온 김에 우리 좀 도와줄래?
 
연나기:어, 엉?
 
 
마술 연구부 부장:여기 풍선 아트부터.. 너무 바빠!!
 
부스의 좌측은 몰려드는 손님 때문에
 
풍선을 만들 일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연나기:(에이, 씨⋯⋯ 원필에게 눈빛 보낸다. 도와 달라는 건 아니고 얌전히 있으라는 그런 뜻.) 뭐 어떻게 도와줘야 되는데.
풍선 이거 불면 되지?
 
당신의 손에 바람 넣는 기구와 새 풍선이 쥐어집니다.
 
 
마술 연구부 부장:자, 여기 앉아!
 
연나기의 자리가 마련되자마자,
 
많은 손님이 풍선을 받기 위해 줄을 지어 서서 기다립니다.
 
예쁜 풍선을 만들기 위해선 행운 판정입니다.
 
 ✷ 행운 판정 ✷ 
 
연나기:
운
기준치: 18/9/3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펑!
 
 ✷ 행운 판정 ✷ 
 
연나기:윽. (흙 만지는 거나 좀 잘 하지, 이런 건 안 익숙하다고⋯⋯!)
운
기준치: 18/9/3
굴림: 45
판정결과: 실패
 
조원필:....
내가 좀 도와줄까?
 
연나기:⋯⋯ 뭐, 왜. 뭐.
⋯⋯으응. (자존심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 행운 판정 ✷ 
 
조원필:
운
기준치: 70/35/14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자, 여기.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풍선 내민다.)
 
연나기:('위원회' 목걸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잘⋯⋯ 하네?
 
조원필:
운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쉬운 것 같은데?
 
연나기:야, 야⋯⋯. 너 혼자만 잘 하지 말고⋯⋯. 내가 잘 하게 되는 뭐, 그런 거 없냐? (소곤거린다.)
 
조원필:(기계처럼 풍선 쭉쭉 뽑는다..)
그런거?
풍선을 잘 불고 싶어서.. 그런 부탁하는거야?
운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아이고, 집중 못해서 하나 터뜨렸다..)
 
연나기:⋯⋯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아, 미안;
방해 안 할게⋯⋯.
 
조원필:
운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대충~.. 이 정도면 되려나?)
나기. 얼추 다 한 것 같은데?
 
연나기:(뚱⋯⋯)
 
 
마술 연구부 부장:정말 고마워!
그으...리고..
 
연나기:(죄 없는 마술 연구부 부장을 동태 눈깔로 쳐다본다.) 또 왜.
 
 
마술 연구부 부장:조금 이따 신체 절단 마술을 할 건데,
조수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서 못 나오고 있지 뭐야..!?
 
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연나기를 빤히 쳐다봅니다.
 
아니, 설마?
 
연나기:설마 나보고 도와달라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연나기는 그대로 신체 절단 마술의 희생양이 됩니다!!
 
연나기:(꼴이 우스워졌다. 아니, 이러려고 부른 거냐고⋯⋯!)
 
 
마술 연구부 부장:기대해주세요! 마술의 클라이맥스, 신체 절단 마술입니다!(막무가내)
 
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연나기의 머리에 토끼 귀를 씌워줍니다.
 
연나기:⋯⋯야!
 
 
마술 연구부 부장:자, 여기 들어가면 되거든?
 
이윽고 연나기는 머리만 내놓은 채로 상자 안에 갇힙니다.
 
연나기:(부들거린다⋯⋯. 수치스럽기 이루 말할 데 없다. 이게 무슨 꼴이냐고. 괜히 조원필 노려본다.)
 
조원필:(내가 뭘.. 잘못했나?)
 
그는 다섯 개의 칼을 들고 불안한 표정으로 연나기를 봅니다.
 
대체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건데….
 
연나기:너⋯⋯ 표정은 왜 그러는데.
연습 제대로 안 했어?
 
 
마술 연구부 부장:나..믿지!
아니! 연습..잘했거든?
 
연나기:아니, 지금 믿게 생겼냐고⋯⋯!
 
 ✷ 행운 판정 ✷ 
 
연나기:
운
기준치: 18/9/3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교복을 조금 베입니다.
 
연나기:야⋯⋯! 조심히 안 해?!
 
조원필:..?! 죽는거아냐?
 
 
마술 연구부 부장:미안!! 미안..
다시 한번~...
 
 ✷ 행운 판정 ✷ 
 
연나기:(이 앙다물고 말한다. 교복은 네가 물어내라⋯⋯.)
운
기준치: 18/9/3
굴림: 1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듣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 행운 판정 ✷ 
 
 
마술 연구부 부장:헤헤 봤지~!
 
연나기:
운
기준치: 18/9/3
굴림: 42
판정결과: 실패
 
또 한 번 교복이 찢겨나갑니다.
 
연나기:⋯⋯ ⋯⋯⋯⋯ (부들부들⋯⋯.)
 
 
마술 연구부 부장:아니..! 나기야.
움직이지말고오..
얌전히 있어봐!
 
 ✷ 행운 판정 ✷ 
 
연나기:(이게 지금 누구 탓을⋯⋯.)
운
기준치: 18/9/3
굴림: 42
판정결과: 실패
 
조원필:아 그만해!
 
연나기:⋯⋯.
 
조원필은 무대에 난입해 상자를 열더니
 
연나기를 끌어당깁니다.
 
조원필:다친 곳 없어?
너는, 무슨 연습도 안하고 애를 데려가?
협의도 안하고, 남 탓만 하기는..(으르릉)
 
연나기:?! 야, 갑자기 난입하면 어떡해⋯⋯. (만류하듯 네 옷자락 잡는다. 화는 이 쪽이 내려고 했더니. 되려 원필이 더 성을 내니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조원필:진짜 칼이 아니더라도 위험하잖아.
이런 건 시키지마.
 
 
마술 연구부 부장:아, 알았어...(쭈굴)
미안 나기야.. 협의도 없이..
 
연나기:⋯⋯ ⋯⋯그래! 임마. (분위기를 풀려는 시도 같은 것.) 이거 봐, 교복 다 찢긴 거.
 
 
마술 연구부 부장:어...응! 그건 내가 물어낼게.
 
부장이 도장을 꺼내 빈 차트에 찍어줍니다.
 
꾹, 비둘기 모양의 도장이 차트에 찍힙니다.
 
 
마술 연구부 부장:수고했어! 진짜 고마워..
저 친구는.. 되게 무섭네......(눈치)
 
연나기:⋯⋯ 괜, (안 괜찮다.) 찮아. 그래도 저기 풍선은 인기 좋은 것 같으니까⋯⋯ 계속 해.
가자. (저도 모르게 원필의 손 잡고 문 밖으로 이끈다.)
 
조원필:...진짜 이상하다니까.
왜 이런 걸 준비도 안하고 너만 고생하는거야? (투덜..)
다음, 어디로 갈까?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연나기:⋯⋯ 큽. (왜 웃음이 나오는지⋯⋯.) 네가 다 화 내 줘서 내가 짜증낼 틈도 없었어.
(차트 확인하려다 그제야 잡은 손 의식했는지 빠르게 놓아준다. 고개 들어 눈 맞추고) 미술부 갈까, 그럼?
 
조원필:왜 놓는거야? 난 이렇게 손 잡고 가는 거 좋은데..
(다시 손 내민다.)
잡아줘.
 
연나기:⋯⋯ ⋯⋯손, 잡는 거 좋아하냐⋯⋯? (우물쭈물하다 네 검지 손가락에 제 것 감싸는 정도로 그친다. 조금 민망할지도. 근데 이 편이 좀 더 어색하리란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조원필:(다시 손 고쳐 깍지 껴 잡는다. 검지만 잡으면 불편하지 않나? 싶어서.)
이러니까 친구같고, 좋다. 그치?
 
연나기:(쭈볏⋯⋯!)
 
조원필:미술부 간다고 했지?
 
연나기:(어느 친구가 손깍지를 끼는데⋯⋯?!) 어, 어.
 
문화제의 꽃, 귀신의 집은 바로 미술부의 담당입니다.
 
특히 올해 귀신의 집은 폐쇄 병동 컨셉으로,
 
리얼한 분장과 퀄리티 높은 세트로
 
축제 시작 전부터 주목받던 부스입니다.
 
아직 개장하지 않아 사람이 없습니다.
 
붕대를 둘둘 감은 부장이 나와 연나기에게 말합니다.
 
연나기:아옥, 깜짝아.
 
 
미술부 부장:아, 나기네.
 
연나기:어어. 부장이지? 못 알아 볼 뻔 했네.
 
 
미술부 부장:밝을 때 시작하면 안무서울 거라고 해서 늦게 열기로 했어.
해가 지면 개장이야. 준비는 다 끝났는데.
아, 그 전에 테스트 해볼래?
 
연나기:아, 하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 어두우면 더 무섭겠는데? (두리번거린다.)
그래, 그럼. (선뜻 대답한다. 원필에게 의사 묻듯이 잡은 손 살짝 흔들었다.) 넌? 괜찮지?
 
조원필:난 뭐든 좋아. 여기서 동료들도 마주칠 수 있는건가? (장난스레 웃는다.)
 
 
미술부 부장:.... 마침 둘이 손도 잡고 있네.
둘이 사귀는거야?
 
연나기:아, 아니⋯⋯ 이건!
 
부장은 자연스럽게 조원필과 연나기의 손목을 묶어줍니다.
 
 
미술부 부장:한 쪽이 무서워서 버리고 도망가면 안되니까 이런 것도 준비 해봤어.
시작 전에 잠깐만.
 
부장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와
 
두 사람을 귀신의 집앞에 세워둔 채 찰칵, 찍어줍니다.
 
조원필과 연나기는 손목이 묶인 엉성한 포즈로
 
기념촬영을 당했습니다.
 
카메라는 금방 사진을 뱉고,
 
부장이 몇 번 팔랑거리자 완성됩니다.
 
조원필은 신기한 듯 계속 기웃댑니다.
 
 
미술부 부장:여기 있어. 둘이 잘어울리네. (나기한테 내민다.)
 
연나기:⋯⋯ ⋯⋯ (얼굴 붉어진 것까지 다 찍혔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조원필:우와, 신기하다.
내가 가져가면 안돼?
 
연나기:⋯⋯(사진 잠자코 바라보다 네 쪽으로 내민다.) 그럴래? 너넨 사진기⋯⋯ 같은 거 없지.
 
조원필:(사진 받고서 빤히 본다.) 응, 되게 가져가고 싶네.
쿠라마 할멈이 좋아할 것 같아. (중얼..)
들어갈까? 나 준비 다 됐는데. (맞잡은 손에 힘 들어간다.)
 
 
미술부 부장:(열...)
아직 썸?
 
연나기:야, 야! 왜 자꾸 신경 쓰는데! (부끄러운 것 숨기려 잔뜩 노려보며 썽 낸다.)
쿠라마? (그새 중얼거리는 것 들은 듯) ⋯⋯너네 할머니 이름이야?
 
조원필:아니, 구미호 할멈 있어.
 
아무튼, 그렇게 두 사람은 귀신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발을 들이자마자 싸한 소독약 냄새가 퍼집니다.
 
유난히 강한 냉방 때문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네요.
 
무시무시한 음향 효과에 드라이아이스 연기까지,
 
제법 잘 만든 세트장입니다.
 
 ✷ 1D12 판정 ✷ 
 
연나기:(으스스한데. 누가 손재주 좋은 애들 아니랄까봐⋯⋯.)
rolling 1d12
(
6
9
)
 
=
6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잠깐, 설마 이 작은 귀신의 집 안에 서 길을 잃은 걸까요?
 
말도 안 됩니다!
 
 ✷ 항법 판정 ✷ 
 
연나기:(그래봤자 교실인데 뭐. 잡은 손을 위안삼아 길을 찾으려 노력해본다.)
항법
기준치: 10/5/2
굴림: 41
판정결과: 실패
 
조원필:나기이.
거기가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자기 쪽으로 끌어준다.)
여기부터 시작이야.
 
 ✷ 1D12 판정 ✷ 
 
연나기:아, 아냐? 나 나름 길 잘 찾는데. (머쓱하게 끌려간다.)
rolling 1d12
(
1
9
)
 
=
1
 
누군가가 연나기의 발목을 움켜쥡니다.
 
벗어나려 해도 워낙 강한 힘으로 잡아당겨
 
벗어나기 힘듭니다. 어떡해!
 
연나기:뭐, 뭐야?! (흠칫, 티나게 놀라며 잡지 않은 손으로 원필의 허리 감싸안는다.)
 
조원필:왜, 뭐가 있어? (어리둥절)
밟으면... 아프겠지. (나기 발목 잡은 손 빤히..)
 
연나기:뭐, 뭐가 나 잡아당겨⋯⋯! (SOS 친다. 공포의 집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조원필:(허리 숙이더니 힘주어 손 떼어낸다. 세게도 잡았네.)
너,...... 손 많이 가네. (장난)
 
연나기:⋯⋯ ⋯⋯ (그제야 정신 차린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겠지만, 아마⋯⋯ 잔뜩 붉어졌을 터다.) 아, 아니거든?! 귀신의 집 원래 잘 안 가는데, 진짜⋯⋯!
 
조원필:왜? 이런 으스스한 분위기는 무서워?
 
연나기:(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전혀 아니거든?
그냥 갑자기 잡으니까 놀란 것 뿐이라고.
 
 ✷ 1D12 판정 ✷ 
 
연나기:
rolling 1d12
(
8
9
)
 
=
8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연나기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깁니다.
 
뒤돌아보면,
 
어라?
 
아무도 없습니다.
 
연나기:(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방금 누가 나 잡아당겼는데.
 
조원필:인기척이 안느껴졌는데.
진짜 귀신인가?
 
연나기:그⋯⋯ 그럴 리가 없잖아! 잡아당기고 숨었겠지⋯⋯!
 
조원필:아, 여기가 마지막인가봐.
 
 ✷ 1D12 판정 ✷ 
 
연나기:
rolling 1d12
(
10
9
)
 
=
10
 
누군가가 흐느껴 울고 있습니다.
 
누구지?
 
일단 연나기는 아니고,
 
조원필도 아닙니다.
 
왜 이렇게 서럽게 울고 계시는 거예요???
 
연나기: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면⋯⋯.
 
조원필:우리 나가려니까 슬픈가보다.
나가지 말까?
이게 마지막이긴 한데.
 
연나기:넌 왜 그렇게 태연해? (괜히 심술 부리려 맞잡은 손 꾸욱⋯⋯ 더 세게 쥔다.)
 
조원필:이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많으니까. (어깨 으쓱하고 문 연다.)
 
두 사람이 귀신의 집을 완주하면
 
부장이 노트와 펜을 든 채 맞이합니다.
 
 
미술부 부장:어때? 후기 좀 들려줘.
개선할 점도 같이.
 
연나기:⋯⋯ 근데, 총 몇 명이 숨어 있었던 거야?
 
 
미술부 부장:총 3명.
나머지 두명은 다른 부스 돌고 있거든.
 
조원필:음~.. 중간에 발목 잡는 거 말야, 그거 너무 세게 잡지 마.
다들 당황해서 넘어지겠더라.
길도 잃기 쉬울 것 같던데 파티션을 쳐도 좋을 것 같은데.
 
연나기:(아.) 그래, 맞아. (제 발목 들어 보여준다.) 여기 자국 남았어.
 
 
미술부 부장:응? 발목 잡는 역할은 지금 부스 체험 중일텐데..
여튼, 고마워.
 
연나기:뭐라고?
 
후기를 들은 부장은 도장을 꺼내
 
우선 연나기와 조원필의 손등에 찍어줍니다
 
귀여운 꼬마 유령 모양의 도장입니다.
 
연나기:⋯⋯ ⋯⋯(싸해진 분위기에 느리게 고개 돌려 원필을 바라본다.) 쟤 뭐라 했어, 방금?
 
조원필:사람의 것은 아니긴했지. (^^)
 
연나기:아니, 넌 그럼 알면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이 창백해진다.)
 
조원필:하하! 요리부로 갈까?
좀 쉬자. 안색 좀 봐.
 
연나기:야, 야!! 말 돌리지 마!
 
조원필:모르는 게 약이야~.
 
연나기:이익⋯⋯! (와중에 따라올까 봐 무서웠는지 그냥 아예 팔짱 껴 붙들어 버린다.)
 
요리부의 부스는 일일카페입니다.
 
돌아다니느라 지친 사람들이 목을 축이기 위해 하나둘씩 모이고 있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요리부 사람들이
 
나기를 보자 일제히 움직임을 멈춥니다.
 
살았다,
 
싶은 표정이네요.
 
뺨에 밀가루 반죽을 묻힌 요리부 부장이 연나기를 반깁니다.
 
 
요리부 부장:서빙 인력이 부족해서요, 잠시만 도와주시겠어요?
 
연나기:어째 방문하는 곳마다 인력이⋯⋯. (그래, 이젠 익숙해졌다는 듯 잠시 리스트를 네게 맡기고 팔을 걷는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연나기가 응한다면, 앞치마를 내밉니다.
 
자, 테이블 1, 2, 3에 서빙을 합시다.
 
어느 곳부터 할까요?
 
연나기:(테이블 2로 간다.)
 
주문은 케이크입니다.
 
받자마자 왁팍팍팍 한 접시를 비운 주문자는
 
갑자기 비굴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묻습니다.
 
 
두 번째 테이블 손님:저어...
계산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해서요.
조금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연나기:⋯⋯ ⋯⋯ 안 되는데요. (당연하지만, 서비스직은 천직이 아니다.)
 
 
두 번째 테이블 손님:딱 2백원만!
따악... 200원만...........
 
연나기:돈이 부족한데 왜 오신 거죠?
 
 
두 번째 테이블 손님:먹고싶잖아!
당이 떨어지니까!!
 
연나기:(조원필, 어떡해? 흘긋 뒤 돌아 네 쪽 본다.)
 
조원필:손님.
설거지라도 하고 가세요, 그럼.
어디서 큰 소리야...
(어때? 하는 표정)
 
연나기:(⋯⋯ 딱히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지만, 나기의 입장에선 괜찮은 대답이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 오, 좋은 생각이네.
설거지 하고 가세요.
 
주문자는 터벅터벅 설거지를 하러 들어갑니다..
 
다른 테이블로 서빙을 하러 가볼까요?
 
연나기:(이번에는 테이블 1로 간다.)
 
혼자 온 듯 쓸쓸한 표정을 지은 사람이 테이블 앞에 앉아있습니다.
 
주문은 커피였네요.
 
연나기가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자마자,
 
그 사람은 한 모금 마시더니
 
한껏 더 쓸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첫 번째 테이블 손님:커피가 흙처럼 써요.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워주면 먹을 만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연나기:⋯⋯네?
(뭐야, 이 오타쿠는. 대충 무미건조하게 뱉는다.) 맛있어져라.
됐나요?
 
 
첫 번째 테이블 손님:훗..,,
감사합니다...
 
연나기:⋯⋯ ⋯⋯(정말 이걸로 된 거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세 번째 테이블로 가봅시다.
 
연나기:(뭐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세 번째 테이블로 간다.)
 
두 명의 초등학생이 광고지를 들고 발을 까닥거리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1:여기에 집사 오빠나 메이드 언니는 없나요?
집사 오빠 카페라고 해서 온 건데….
집사 오빠가 없으면 공주님이 될 수 없어요!
 
조원필:...그렇다는데.
(나기 빤히 봄.)
 
연나기:뭐가 그래. 왜 날 보는데? (삐죽⋯⋯.)
(그리고 다시 시야 안에 들어온 초등생 두 명을 본다. 집사니, 메이드니⋯⋯ 어린 애들이 벌써부터 저런 걸 찾냐. 원필의 귀에 대고 소근거린다.) 집사 연기는 어떻게 하는 거냐⋯⋯?
 
조원필:글쎄... 집사가 어떤 느낌이야?
공주를 보필하는... 하인?
정중하게 달래봐.
 
연나기:⋯⋯ 씨이. (알았다고. 궁시렁거리며 어린 아이 눈높이에 맞춰 한 쪽 무릎 굽혀 앉는다. 오글거림을 뒤로 하고 작게 웃었다.) 공주님, 주문하시겠어요?
 
 
초등학생 1:어! 집사 오빠다!!
오빠. 저희 케이크랑요..~..
우유!
 
 
초등학생 2:오빠 진짜 잘생겼어요!
여자친구 있어요?
 
연나기:우유랑⋯⋯ 케이크? (어릴 때부터 취재 요청이니, 인터뷰니⋯⋯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었기 때문에 적당한 이미지 관리엔 나름 능숙했다. 네가 보기엔 어색하겠지만.) 저에겐 공주님밖에 없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 ^-^)
 
조원필:우왓...(ㅋ)
 
연나기:( ^ - ^ ) (연기 끝나면 조원필한테 뭐라 할 생각 만만이다.)
 
 
초등학생 2:(꺄르륵 웃는다!!) 저희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연나기:네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천~ 천~ 히⋯⋯ 돈다. 바로 내려가는 입꼬리.)
 
조원필:연기 잘하던데.
전생에 집사였어? (악의X)
 
연나기:그럴 리가 없잖아! (민망하니 괜히 짜증낸다.)
 
조원필:흐응.. 얼른 가져다줘.
공주님들 화내실라.
 
연나기:이게⋯⋯! (아무튼, 주문받은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을 때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식이지만.)
 
서빙이 끝나면 부장이 도장을 꺼내 빈 차트에 찍어줍니다.
 
꾹,
 
케이크 모양의 도장이 차트에 찍힙니다.
 
 
요리부 부장:수고했어요!
 
연나기:둘째 날에도 정신없을 것 같은데 사람을 더 뽑는 게 좋겠어.
 
 
요리부 부장:진상도.. 너무 많죠?
 
연나기:⋯⋯뭐, 나름 귀여운 진상도 있더라.
 
 
요리부 부장:둘째 날도 오시면 좋을텐데..
꼬마 공주님들이요?
연기 잘하시던데요!
 
연나기:(또 언제 본 거야?! 얼굴 새빨개지며) 됐거든! 사람 더 뽑아.
 
 
요리부 부장:그러고보니.. 연극부로 가보세요!
30분 뒤에 본 공연이 시작된다고 하더라구요~.
 
연나기:⋯⋯알았어. (이젠 당연하다는 듯이 네 손 먼저 잡는다.)
매혹
기준치: 5/2/1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의도하진 않았다. 아무튼 아니다.)
 
조원필:..?
꼬시는거야? (어째 모양이 서툰데..)
 
연나기:아⋯⋯ 아니거든?! 손 잡는 거 좋다매.
 
조원필:섬세하기는, 맞아.
 
소강당에서는 연극부의 연극 준비가 한창입니다.
 
앞으로 약 30분 후,
 
본 공연이 시작 된다는군요.
 
부장이 연나기를 발견하자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연나기:또⋯⋯ 뭔데.
뭐가 또 부족해?
 
 
연극부 부장:마침 잘 왔어! 세트 몇 개를 무대 뒤로 옮겨놔야 했는데~!!
후배 몇이 깜빡했지 뭐야. 지금 도와줄래?
 
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옮겨지다 만 무대 세트가 보입니다.
 
무거운 짐을 옮기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네요.
 
 ✷ 근력 판정 ✷ 
 
연나기:나 '이무기'도 들어서 (이건 네게만 들릴 만큼의 소리로 속삭인다.) 옮긴 사람이야. 잘 봐라⋯⋯.
근력
기준치: 62/31/12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무리 없이 다른 연극부원들과 함께 무거운 세트를 실어 나릅니다.
 
그때, 몇몇 학생들이 천장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릅니다.
 
무대용 조명장치 하나가
 
나기가 있는 방향으로 추락합니다.
 
연나기는 문득 데자뷰를 느낍니다.
 
분명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 민첩 판정 ✷ 
 
연나기:잠, 깐⋯⋯.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움직이고 싶지만,
 
몸이 그대로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원필:연나기!
 
그걸 본 조원필이 빠르게 연나기의 몸을 잡고 바닥을 뒹굽니다.
 
그와 동시에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치가 박살납니다.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 이성 판정 ✷ 
 
연나기:으⋯⋯. (부서진 잔해 쪽으로 시선 주다, 금세 네 상태 살피려는 듯 몸 더듬었다.) 괜찮아?!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조원필:난 괜찮아.
......넌 괜찮아?
 
주변에 있던 연극부원들의 시선이 쏠립니다.
 
조원필은 연나기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 황급히 확인합니다.
 
 
연극부 부장:괜찮아? 보건실로 가지 않아도 되겠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운 부장이 말합니다.
 
연나기:난⋯⋯ 얘 덕분에. (그래도 바닥에 부딪혀 등이 조금 아리다.)
 
 
연극부 부장:내가 다 부주의해서 벌어진 일이야!!!!! 정말.. 이런 일은 하..
 
문득 혼잣말로 툭 말합니다.
 
 
연극부 부장:이상하네, 어제 점검했을 땐 튼튼했는데...
 
그 말은 꼭, 누군가가 연나기를 해치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연극부 부장:아무튼, 많이 놀랐을 테니 조금 쉬었다 가.
저것만 치우면 바로 리허설에 들어갈 거라 보고 가지 않을래?
 
조원필:너만 괜찮으면, 난 상관 없어.
(연나기 등 쓸어준다.)
 
연나기:(고개 끄덕인다. 의지하듯 네 손 꽈악 잡았다. 놓을 생각 없다는 듯⋯⋯) 연극에 지장 없다면 다행이고. 그럼 보고 갈게.
 
부장이 도장을 꺼내 빈 차트에 찍어줍니다.
 
꾹, 나무 모양의 도장이 차트에 찍힙니다.
 
연극이 끝나고, 조명이 켜집니다.
 
조원필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신중하게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연나기:⋯⋯무슨 생각 해?
 
조원필:응? 이계에도 같은 내용의 전설이 있거든.
 
연나기:이거랑 똑같이?
 
조원필:...응, 그래서 신기하네.
진정은 좀 됐어?
(잡은 손 엄지로 쓸어준다.)
 
연나기:(평행 세계? ⋯⋯같은 건가. 신기하다는 듯 너 빤히 쳐다본다. 손등 간지럽히는 느낌 들 적이면 다문 입에 힘 준다. 그러니까, 잘 생겨서 그래. 잘 생겨서⋯⋯.) 덕분에. 너 날쌔더라.
 
조원필:너 정말 큰 일 날뻔 했어.
내가 없었으면,....
 
연나기:아,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조원필:어제도?
 
연나기:응. 그 땐 어떻게 잘 피했는데⋯⋯ 아까는 무거운 것도 들고 있어서 피할 겨를이 없었네.
이상해. 마가 꼈나 봐.
 
조원필:...조심 좀 해. 바보야.
(어깨 툭 기대고 고개 부비다가 일어난다.)
 
연나기:내가 왜 바보냐? 떨어지는 건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 (기댄 정수리에 뺨 가볍게 부비다, 따라 일어난다.)
 
담당 부스를 전부 돌고 나면, 어느덧 하늘은 어둑어둑합니다.
 
도장이 전부 찍힌 차트를 받은 축제 위원회장이
 
연나기의 등을 두드려줍니다.
 
 
위원회장:고생많았어.
 
이대로 오늘의 일이 끝나나 싶었는데,
 
아직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군요.
 
연나기:많긴 했지, 진짜. (진 빠진다⋯⋯.)
또?
 
 
위원회장:힘들 텐데 미안해.
외부인이 학교 뒷산으로 들어갔다는 제보가 있어서,
분명 못 들어가게 막아놨는데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네.
대신 확인해주지 않을래?
 
연나기:⋯⋯? (이게 그건가? 고개 돌려 너 본다.)
 
조원필:...흠.
 
연나기:(귓가에 소곤거리며) 왜, 너가 잃어버렸다던 동료⋯⋯.
 
조원필:같이 따라가줄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해가 진 뒤의 산은 무척 위험하니까.
(근데 저 놈은 왜 보내는거야? 괜히 위원장 째려본다.)
 
연나기:(작게 웃는다. 등 두드리며) 야, 야. 따라와.
그럼 다녀올게.
 
시일고의 뒷산은 작고 고도가 낮지만,
 
관리되지 않아 수풀과 나무가 무성합니다.
 
이사장이 관리비를 빼돌렸다는 뒷말도 돌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뒷산에 ‘신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신성한, 혹은 저주받은 나무가 존재하는 산에
 
괜스레 손을 댔다간 저주받을지도 모른다고,
 
연나기 역시 동네의 몇몇 어른들이 수군대는 걸 듣지 않았나요?
 
실제로, 신목 근처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 때문에
 
학생들은 산에 접근하는 걸 꺼렸습니다.
 
조원필은 산 입구에 진입하자,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갑니다.
 
조원필:....외부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네.
 
연나기:야, 조금 천천히 가. (헉, 헉⋯⋯. 거친 숨 내뱉는다.)
 
올라가는 모습이 굉장히 익숙합니다.
 
그는 마치 오랜 세월 산에서 지낸 것처럼,
 
평지를 걷듯 무난하게 위로 향합니다.
 
조원필:자, 손 잡아.
 
연나기:끄응. (두 손 내밀어 잡는다. 잡는다⋯⋯ 기엔 밧줄마냥 잡아당기는 것에 가까웠지만. 이 또한 심술이다.)
 
조원필:야아.
일부러 그러는거지.
 
연나기:힘들어어.
 
여긴 연나기의 학교 뒷산인데, 조원필이 이끌다니….
 
그런 조원필을 뒤따라 걷다 보면,
 
우뚝 선 웅장한 크기의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로
 
거대한 가지를 하늘로 높이 뻗고,
 
굵은 뿌리를 내린 채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분명히 신목입니다.
 
그 주위에는 낡은 금색 새끼줄이 이리저리 늘어져 있습니다.
 
연나기:⋯⋯이건 만지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조원필은 새끼줄을 걷으며 신목 앞으로 다가갑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거친 나무의 표면에 가져다 대고,
 
한참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로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조원필:흠....
 
조원필은 신목 앞을 떠나 다시 연나기에게로 돌아옵니다.
 
조원필:신목에게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에 관해 물어보고 왔어.
 
연나기:그런 게 된다고? (기묘하네.)
뭐래? 그래서.
 
조원필:신목은 이 산의 주인이기 때문에 전부 알고 있거든.
두 번째 신목 밑에 있대. 10분 정도 걸으면 찾을 수 있겠더라.
그거 알아? 난 요괴 중에도 몇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연나기:에⋯⋯ 그래? (나무가 그런 것도 가르쳐 주는구나. 이어지는 말엔 고개 기웃거린다.)
 
조원필:신목은 이계와 인계를 잇는 문이지만, 열기 위해선 복잡한 조건이 필요하거든.
내 능력은 조건 제한 없이 강제로 신목의 문을 개방해 인계와 이계를 넘나드는 거야.
 
조원필은 품에서 방울 꾸러미를 꺼냅니다.
 
9개의 방울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습니다.
 
어쩐지 익숙한 방울이다 싶었는데,
 
연나기:(방울⋯⋯?)
 
이건 연나기가 가진 방울과 같은 모양이네요.
 
뭐, 방울 모양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조원필:이건 내 힘이 담긴 방울이야. 문을 여는 것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연나기:더 많은 거라면⋯⋯ 어떤 거?
 
조원필:이런저런 요력?
건강도 되찾을 수 있고.
 
연나기:오⋯⋯ 편리하네. (제 주머니에서 방울 한 개 꺼내 보여준다.) 이것도 그런 게 되나?
 
조원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 생김새를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조원필:......이게 왜 너한테 있을까?
이건 내 방울이네.
이 방울은 내가 소중한 사람에게 준 거였거든.
 
연나기:엥, 그래? 착각한 거 아니고?
 
조원필:혹시 누구에게 받았는지 말해줄 수 있어?
 
연나기:⋯⋯이거 아마 대대로 전해지는 걸 걸? 아마 할아버지려나⋯⋯. (것보다 소중한 사람이라니. 왠지 좀 가라앉는 기분이다. 아니, 착각이야.)
 
조원필:..표정이 어두운것같은데.
아까 그 일 때문에 좀 그래?
갑자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연나기:아냐, 그 일하곤 관계없어⋯⋯
 
조원필:...그럼?
 
연나기:그으⋯⋯ (저기압의 원인이 네게 소중한 사람 때문인 것 같다고, 어떻게 말해.) 진짜 별 거 아니거든? 아무튼, 방울로 뭐 할 생각인데.
 
조원필:응? 뭘 할 생각은 아니고.
잘 간직해둬.
가자, 걸을 수 있겠어?
 
연나기:알았어. (품 안에 방울 깊숙히 집어넣는다. 이어지는 말엔 고개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점점 어둑해집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두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두 번째 신목 밑에는
 
아직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있습니다.
 
연나기와 조원필을 발견한 아이들은 울먹이다 두 사람의 방향으로 달려와
 
안긴 채 목 놓아 울어 버리네요.
 
아무래도,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초등학생 1:흑..흐극,.. 산속에서 길을 잃어서...
걷다가 큰 나무를 찾아서 여기서 쉬고 있었어요....
 
연나기:그래, 이제 집에 가자. (안심하라는 듯 등 토닥여주고, 상태 확인한다. 다행히 걸을 수는 있는 상태군.) 더 어두워지면 안 되니까 얼른 데리고 내려갈까.
 
조원필:그게 좋겠다. 내가 봐주면서 앞장 서서 걸어갈게. 너도 발 밑 조심하고.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연나기와 조원필은 산에서 내려갑니다.
 
 ✷ 관찰 판정 ✷ 
 
연나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나무 위에서 검게 일렁이는 작은 그림자를 봅니다.
 
두 눈이 밝게 빛난다고 생각했을 때,
 
연나기:⋯⋯! (순간 움찔한다.)
 
갑작스레 발밑이 푹 꺼지고, 몸이 앞으로 기울어집니다.
 
저항할 수 없는 압력에 의해
 
연나기:잠, 깐⋯⋯.
 
연나기의 몸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무릎은 쓸리고, 발목이 시큰거려,
 
걷기는커녕 일어서기도 힘듭니다.
 
설상가상으로 신고 있던
 
운동화 한쪽은 어딘가로 도망가버렸네요.
 
이상한 일입니다.
 
어제의 일부터 오늘 연극부에서 있었던 사건까지,
 
어째서 이런 불운이 자꾸만 닥치는 걸까요?
 
조원필:연나기! 무슨 일이야.
많이 다쳤어?
 
연나기:아윽⋯⋯. (아프다. 발목 접질린 것 같은데. 아픈 곳 부여잡고 잔뜩 인상 쓴다.)
 
조원필:신발이 없네.. (네 발목 감싸쥐고는 주위 둘러본다.)
안되겠다, 업힐래?
 
연나기:괜찮아. (아니지만 일단 여기선 널 제외하면 제일 연장자니까.) 까짓 거 맨발로 가지 뭐. 애들이나 챙겨.
 
조원필:안돼.
이 상태로 어떻게 걸어간단 거야?
(나기 안아올릴 준비하고는)
목에 팔 둘러.
 
연나기:⋯⋯ (맞다. 앉아서 자세 잡는 것조차 힘든데 혼자 산을 내려가긴 개뿔이⋯⋯ 작게 한숨 쉰다.) 그럼 부탁⋯⋯ 아니, 이렇게 안는다는 거였냐?!
 
조원필:왜? 이 자세는 좀 그런가..
지금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연나기:하⋯⋯ 아, 아냐. 너 편한 대로 해. (조금 모양 빠지지만; 네 목에 두 팔 두른다.)
 
산에서 내려와 아이들을 돌려보낸 뒤,
 
위원장에게 보고까지 끝마치면
 
오늘 연나기의 업무는 종료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은 축제를 즐기는 것보다도 휴식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나기가 축제를 즐기길 바란다면,
 
캠프 파이어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조원필:...집으로 돌아갈까?
 
연나기:⋯⋯ 축제 더 안 봐도 되냐? 캠프 파이어 같은 것도 너네 세계엔 없을 거 아냐.
 
조원필:네 발목 상태가 더 걱정이야.
나야 다시 와서 봐도 되는거고.
너 오늘 무리했잖아.
 
연나기:좀 아프긴 한데. (아야. 뼈가 시큰거릴 때마다 견디고자 반사적으로 너 꽉 끌어 안았다.) 그래도⋯⋯ 오늘 축제에서 일 한 기억밖에 없단 말이야. 좀 즐기게 해 주려고 했는데.
 
조원필:이미 다 즐겼어.
네가 걱정안해도 될 정도로.
 
연나기:뭘 즐겨. 일만 잔뜩 해 놓곤⋯⋯.
 
조원필:....참나, 아니거든.
나한테 이런 추억은 네가 마지막일거야.
돌아가자.
치료도 하고~. 응?
 
연나기:그래~⋯⋯ 너 알아서 해라. (네 어깨에 고개 기댄다. 아오, 모양 빠져⋯⋯.)
 
두 사람은 흐르는 팝송을 들으며 귀가합니다.
 
교문을 벗어나 멀어질수록 선명하게 울리던 노랫소리가 희미해집니다.
 
이제 완전히 밤입니다.
 
하늘에 뜬 달은 유독 밝지만,
 
완전히 둥근 모양은 아닙니다.
 
그래도 내일이면 만월이 뜨겠네요.
 
연나기를 업고 걷던 조원필은
 
의문이 생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조원필:태양은 아닌 것 같은데, 저건 뭐지?
 
연나기:(덩달아 올려다본다. 질문을 이해를 못 한 것 같다.) 뭐, 달?
 
조원필:달..?
 
연나기:밤이잖아. 달이 뜨는 게 당연하지.
해는 낮에 뜨는 거고.
 
조원필:우린 태양만 있는데.
달은.. 들어본 적이 없어.
저 옆에 있는 빛들은?
 
연나기:그래? 신기하네. (이젠 놀랄 기력도 없다. 과학 시간에 배운 지식을 열거한다.) 옆에 있는 빛이면 별을 말하는 건가. 우주에 있는 수많은 거대한 항성인 거지. 지구는 둥글고⋯⋯ 우주는 넓으니까?
 
조원필:지구가 둥글다고?
저 빛들은 별이구나.
........인계로 오길 잘했어.
우주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연나기:당연히 있지. (낭만⋯⋯) 해는 뜨거워서 착륙할 수 없지만 우주선을 타고 가면 달에 도달할 수 있어. 실제로 간 사람도 있고.
 
조원필:실제로도 갈 수 있어?
뭔가.. 손 뻗으면 닿을 거리같은데,
닿을 수 없어 보이네.
 
연나기:응, 38만 5천 킬로미터만 더 가면 돼. ( ^^)
그 반대지. (정정하듯 네 귓가 만지작거린다.) 닿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결국엔 닿으니까.
그 점이 경이로우면서도 대단한 점이라고 생각해. 인간의⋯⋯.
 
조원필:(시선 내려 가만히 쳐다본다. 선생님을 꼭 닮았지만, 성격도.. 말투도 전혀 달라. 그럼에도 왜 이런 기분이 드는건지..)
넌 그럼.., 커서 뭘 이루고 싶은데?
 
연나기:나? 듣고 놀라지나 마라. (괜히 뜸 들인다.)
 
조원필:말해봐. 안 놀릴게.
 
연나기:달을 지구로 내려보낼 거야. (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하자면 이렇고. 접질리지 않은 다리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좀 관심이 많거든, 내가.
네가 우리 세계로 건너온 것과 비슷해, 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작품 세계를 만들고 싶어. 너는 이 우주를 '인계人界'라 불렀으니 내 차기작은 인계引界가 되겠지.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나만의 세계인 거야. (작품 이야기를 하는 눈이 달빛을 받아 형형하게 빛났다. 바보 같은 생각일지라도, 원래 모든 변화는 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조원필:차기작이라면.. 넌 뭘 하는 사람이야? 미술부 부원들이랑 친해보이긴 했는데. 그림을 그리는건가.., 해서. 인계를 그렇게도 생각하는구나. 나기 넌,.. 확실히 다르네. (이럴 때 보면 선생님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도 항상 내게 어려운 말을 종종 했는데. 그게 참 즐거워보였어.)
네 차기작을 보러오려면 인계로 올 일을 만들어야겠네.
이계도 구경와서, 영감을 받고 가면 좋을텐데.
 
연나기:정확히는 흙으로 빚는 일을 해. 조소라고 들어봤어? (으쓱인다.) 그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도 찍고 하는 거지. (네 말에 고개 끄덕이며) 그러니까, 그래서 너 도와주는 거다? 나도 네 세계가 궁금하거든! (학교에서 보통의 아이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좀 더 철없는 애 같은 면모가 이상하게 너와 있을 땐 자주 드러난다.)
 
마침내 두 사람은 연나기의 집에 도착합니다.
 
조원필:(소파에 너 앉혀두고는 발목 살핀다.)
많이 아팠겠다. 이런데도 혼자 걸어간다느니. 그런 소리나 하고..
아프면 티를 내.
말 안 하면, 다들 모르더라고.
 
연나기:⋯⋯거기엔 애들이 있어가지고. (머쓱한 듯 제 볼 긁적인다.) 내가 아프다고 울면 걔네가 더 불안해할 것 같았어.
 
조원필:울음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는 거 잖아.
그런 걸 왜 신경 써. 넘어지는 소리도 엄청 컸는데. .
....비상약이나, 붕대는 어디있어?
 
연나기:아니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비상약이 있는 쪽을 가리킨다. 다행이도 눈에 띄는 곳에 있어 네가 찾기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원필:(네가 가리킨 곳으로 가 비상약 꺼내온다.) 한 시도 눈을 못 떼겠으니까 그렇지..
 
연나기:그⋯⋯ 렇게 못 미덥냐? (삐죽⋯⋯)
 
조원필:(발 조심스럽게 잡아 붕대 감아준다.)
못 미더운게 아니야.
너한테 계속 위험한 일이 벌어지잖아.
너 혼자 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도 싫단거지.
 
연나기:(다리에 힘을 뺀 채로 잠자코 듣고 있다가, 잠시 고민하듯) 왜 상상하기 싫은데? 그냥 널 구해준 인간이라서 그래⋯⋯?
 
조원필:......모르겠어.
(눈 마주치다 먼저 고개 돌린다.) 치료.. 끝났어.
 
연나기:뭘 모르는데. (손 뻗어 고개 이쪽으로 돌린다.)
 
조원필:기분이 이상해. 뭔가 간질간질하고..,
 
연나기:(어?) ⋯⋯ ⋯⋯ (네 눈 피하지 않고 마주본다.) 근데⋯⋯ 나도.
 
조원필:(네 바짓단 꾹 쥔다. 심장도 쿵쿵 울리는게..)
....나기야.
(고개 좀 더 뻗어 네 볼에 입 맞춘다.)
 
연나기:⋯⋯ (간질간질, 심장께 부근으로부터 퍼져나간 꽃가루가 뺨에도 맺힌 듯 맞닿은 부분이 달아올랐다. 저도 모르게 볼에 바람 넣어 부풀린다. 마음처럼⋯⋯) 나도 해 줄까?
⋯⋯아니지. 해 줘도 돼? (조심스레 물었다.)
 
조원필:.......응, 해줘. (무슨 짓이냐고 화 낼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에 눈을 꿈뻑였다. 서로의 온기가 고스란히 마음에 젖어 들어간다. 인연이란게 참 무섭지. 말갛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연나기:이리 와. (난 다쳐서 그 쪽으로 못 가니까. 네 넥타이 잡아당겨 끌어온 후 가볍게 입⋯⋯ ⋯⋯입?) 엇⋯⋯. (절대 의도한 게 아니었다는 듯 낯이 순식간에 벌개진다. 분명 볼에다가 하려고 했는데?! 완벽한 조준 실패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조원필:(순식간에 맞닿는 입술에 눈이 커진다. 아, 아? 이렇게 저돌적으로? 곧바로 떼어지는 낯에 의도가 아닌 걸 알았다만.., 그래서?) 난 좋았는데. (네 목덜미 끌어당겨 느긋하게 입 맞춘다. 입 맞춤에 능숙한 이유는... 몇 백살 먹은 요괴라.)
(꽤 긴 입맞춤이 이어지다 널 소파에 눕힌다. 딱, 여기까지만 해야지. 입술이 떨어졌음에도 시선은 여전하다.)
...미안, 오버했네.
 
연나기:조, 좋았⋯⋯ (읍, 입술 맞닿자 자연스레 눈 감은 채 들어오는 살덩이를 받아들인다. 반면 이 쪽은 비슷한 경험이라곤 소꿉장난 수준인 입 맞춤이 전부라 네 옷자락 잡은 손에 힘을 들이는 게 전부였다. 첫 키스는 심장이 간질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그런 느낌이구나. 열이 오를 때쯤 길게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진다. 너 올려다본 채 두 손으로 제 얼굴 가린다.)
(눈은 형광등도 달빛 못지않게 밝은 듯 반짝인다.) ⋯⋯나 처음이야.
 
조원필:....얼굴은 왜 가려, 부끄러워서 그래?
 
연나기:(말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인다. 아, 열 올라⋯⋯.)
 
조원필:(네 볼 손등으로 문질러주고는 앞머리 쓸어준다.)
너랑 오래 있고 싶네.
...너랑 있으면 즐거워.
 
연나기:⋯⋯나도! (긍정의 의미로 다급히 뱉는다. 이번에도 소리가 크다.)
나, 다른 애들이랑 있을 땐 그렇게 재밌지 않은데⋯⋯ 너랑 있으면 좋⋯⋯ (눈을 못 마주치겠다. 시선 피한다.) ⋯⋯아.
 
조원필:....다행이다.
오늘도 날 의지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
늘 그렇게 보호해주고 싶지만,...
이럴 때 돌아가야할 곳이 있다는 건 야속하네.
 
연나기:⋯⋯가끔이라도 보면 되지! (다시금 고개 돌려 네 멱(?)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조원필:이제 너무 적극적인거아냐?
발은. 좀 나아진 것 같아?
붕대만 감아서 큰 효과는 없겠다만..,
그러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 다치지말고.
(네 이마에 입술 도장 꾹 찍다 일어난다.) 침대까지 옮겨줄까?
 
연나기:(윽⋯⋯ 그제야 정신차린 듯 잡았던 멱 놓는다. 새침하게)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아까 힘 센 것도 다 봤잖아. 이 정도도 금방 나을걸. (이마에 입술 잠시 내려앉았다 떨어지면 잠시 눈치 보다) 여, 여기에도 해 줘. (입술 아주 사알짝 내민다.)
 
조원필:여기도? (내밀고 있는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춰 주더니 그대로 너 안아올리고는 침대로 향한다.)
그러고보니.. 나기야.
저쪽에 서재가 있던데. 나 구경해도 되는거야?
 
 ✷ 지능 판정 ✷ 
 
연나기:
지능
기준치: 82/41/16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곳에 쌓인 낡은 문헌은 분명히 전해 내려오는 옛 고서들이었죠.
 
그러고 보니, 연나기도 어릴 땐 재미 삼아 창고를 오가며
 
오래된 책들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방울도 거기서 얻었던가요?
 
연나기:(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마음대로 해. 혼자 구경하게? 아빠 몇 시에 퇴근하더라.
 
조원필:으응, 혼자 구경하려고.
문 꼭 닫고 있을게.
 
연나기:여기, 서재 열쇠. (아무래도 자주 가는 편이었기에, 방 벽에 걸려 있던 열쇠 하나 내밀었다.)
 
조원필:고마워. 넌 바로 잘거야?
(침대에 나기 눕혀주고는 빤히 쳐다본다.)
 
연나기:당장은 잠이 안 오는데⋯⋯. (이유는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폰 좀 하고 있지 뭐.
 
조원필:.....잘 자.
 
─────── CHAPTER 三⽇ ───────
 
연나기는 개운하게 기상합니다.
 
어제 다쳤던 다리의 통증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상처 없이 매끈한 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연나기:(엉? 이것도 요괴의 힘인가? 멀쩡한데?!)
 
그러고보니 인기척이 없습니다.
 
조원필은 아직도 서재에 있는걸까요?
 
연나기:(아, 그러고 보니 서재 좀 보겠다더니⋯⋯ 설마, 아직도? 아니면 아빠한테 들킨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와 서재로 향한다.)
 
서재는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으며,
 
조원필이 마지막으로 읽은 것처럼 보이는
 
낡은 책 한 권만이 바닥에 단정하게 놓여 있습니다.
 
 
제목은 ‘이계탐험록’입니다.
 
‘이계탐험록’의 펼친다면,
 
아무것도 없는 종이와 마주합니다. 종이의 결,
 
누르스름한 오래된 종이 특유의 색,
 
곰팡이 향은 여전하지만,
 
적혀있던 글자만은 마치 누군가가 훔쳐간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게 가능한가요?
 
문득, 책을 든 연나기는
 
오래전 이 책을 읽었던 것 같은 데자뷰에 휩싸입니다.
 
 ✷ 이성 판정 ✷ 
 
연나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연나기가 부르며 찾아도 조원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멋대로 눌러앉을 땐 언제고 멋대로 떠나버린 걸까요?
 
간다면 간다고 기별이라도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무튼, 그런 배은망덕한 녀석은 잊고 등교할 준비나 합시다.
 
연나기는 오늘도 축제일을 보조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니까요.
 
연나기:(첫⋯⋯ 첫 키스였는데⋯⋯. 우울하다⋯⋯.)
(어떻게 잊는데!!!!!!!!!!!!!!!!!!) 씨, 간다면 간다고 말이나 해 주지⋯⋯.
 
연나기가 학교에 도착하면,
 
어제와 마찬가지로 위원장이 반깁니다.
 
그는 곤란한 표정입니다.
 
연나기:(우중충⋯⋯ 머리 위에 먹구름이 껴 있다. 말을 잘 골라야 할 것이다.)
 
 
위원회장:밤새 누군가의 소행인지, 축제 세트의 일부가 파손됐어..
 
위원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엔
 
엉망으로 찌그러진 공연용 스피커들이 놓여 있습니다.
 
 ✷ 관찰 판정 ✷ 
 
연나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런데 이상하네요.
 
사람의 완력으로 저런 게 가능한 걸까요?
 
거대한 망치라도 가져와서 두들겨댄 것처럼,
 
기이한 모양으로 뒤틀려 있습니다.
 
위원장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합니다.
 
 
위원회장:아무튼, 후원해주시는 측에서 새로 기자재를 보급해주시기로 했으니 다행이지.
넌 다른 친구들이랑 이것 좀 밖으로 내다 놔줄래?
 
연나기:아니, 뭔 사고가 난 거야? 사람의 힘으로 이게 가능해⋯⋯? 차로 들이받은 것 같은⋯⋯ 일단 알겠어. (어두운 표정으로 찌그러진 스피커 들어 옮긴다.)
근래엔 이상한 일 투성이네.
 
나기 역시 망가진 스피커를 나르기 위해 움직이던 그때,
 
문득 위원장이 말합니다.
 
 
위원회장:그런데 왜 어제 내내 같이 있던 친구랑은 따로 왔어?
아까 마주쳤는데, 싸우기라도 했니?
 
네? 조원필이 축제에 왔다고요?
 
단순히 먼저 집을 떠나 축제에 오고 싶었던 것뿐일까요?
 
연나기:아⋯⋯ 걔는 갔⋯⋯ 뭐?
 
그렇다면 왜 연나기한테 말도 하지 않고 왔을까요.
 
문득 연나기의 마음 한편에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혹시, 기자재를 망가뜨린 게 조원필은 아닐까요?
 
다리를 치료해준 기이한 힘을 생각하면,
 
저렇게 망가진 스피커도 이해 가능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연이어 여태까지의 사고도 꼬리를 물고 떠오릅니다.
 
전부, 라고 생각하긴 힘들지만,
 
연나기가 당한 불운의 사고 중에
 
조원필의 짓이 섞여 있다면?
 
연나기:(⋯⋯그럴 리 없어. 바보냐, 그 딴 오해할 정신머리면 축제도 안 왔지.)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
 
생각이 강제로 끊깁니다.
 
연나기:⋯⋯!
 
야외에 놓인 요리 부스 한구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분명 바베큐를 굽는 부스였죠.
 
불이 난 걸까요?
 
소화기가 어디 있더라,
 
연나기가 허겁지겁 움직이려던 그때,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소란이 일어납니다.
 
어떤 부스는 기둥이 무너져내리고,
 
교내 부스 중 하나는 창문이 깨지고,
 
멀쩡히 잘 달려있던 무거운 간판이 떨어집니다.
 
부상자가 발생한 듯 구급차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연나기:뭐야, 갑자기! (일단 달린다.)
 
혼란한 가운데 연나기는 똑똑히 목격합니다.
 
아수라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뛰어가는 조원필을요.
 
조원필은 굳은 표정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연나기:조원필!!!!!!!! (부른다. 네게 닿을 리 없지만. 일단 쫓아가자.)
 
이름을 불러도 들리지 않는 듯,
 
잠시 멈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도로 뛰기 시작합니다.
 
 ✷ 민첩 판정 ✷ 
 
연나기: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 민첩 판정 ✷ 
 
연나기: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 민첩 판정 ✷ 
 
연나기: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엉망이 된 축제를 뒤로하고, 연나기는 조원필의 뒷모습을 따라갑니다.
 
인파를 헤치고, 모퉁이를 돌고 돌아,
 
연나기는 학교 뒤편 쓰레기 소각장에 도착합니다.
 
연나기:헉, 헉⋯⋯ 안 보여. 어디로 간 거야?!
 
조원필은 연나기를 등지고 서서 한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나기가 채 말을 걸기도 전에,
 
노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조원필:역시, 네 짓이지? 그만두지 못해?
 
……연나기한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원필은 연나기가 따라가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는걸요.
 
연나기:(뭔가 심각한 분위기인 것 같아 일단 몸을 숨긴다.)
 
이채: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그에 응하듯,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면,
 
조원필의 맞은편에는 검은 인영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흐물거리던 인영은 점점 형태를 이루더니,
 
뱀과 여우를 섞은듯한 외형의 요괴로 변합니다.
 
긴 머리카락이 베일처럼 늘어져 흩날리고, 얇은 눈매는
 
으스스하게 올라서 있습니다.
 
조원필은 표정을 굳히고 경계합니다.
 
내내 숨기고 있던 꼬리와 뿔이 돋아나고,
 
연나기:(⋯⋯! 두 손으로 제 입 틀어막는다.)
 
눈매에는 요기가 서립니다.
 
두 요괴가 꼿꼿하게 마주 서자,
 
형형한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조원필과 낯선 요괴는 당장이라도 엉겨 붙어
 
싸울 것처럼 대치합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둘 다 이계에서 온 요괴가 아니었던 건가요?
 
대체 왜 이렇게 흉흉한 표정으로 대립하는 거죠?
 
감정이 격양된 두 요괴 주변에 검은 안개가 장벽처럼 피어오릅니다.
 
안개에 닿은 벽과 바닥이 순식간에 부식됩니다.
 
인간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크게 다칠 게 분명합니다.
 
장벽 너머로 목소리만 들려옵니다.
 
연나기가 끼어들 틈은 조금도 없습니다.
 
조 원필:이곳에 혼란을 일으킨 건 네 짓이잖아, 이채.
네 기운을 내가 못 느낄 것 같아?
흩어진 사자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
 
이채:후후,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변명할 수도 없겠네.
그래, 전부 내가 저지른 짓이고, 그런 피라미들은 다 죽였지.
 
조 원필: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채:조원필, 들어봐,
난 전부 우리의 세계를 위해서 한 거야.
 
조 원필:그게 무슨 소리야?
 
이채:너나 다른 사자들같이 인간에게 무른 자들이 방해해서, 이계는 멸망을 맞이할 테니까.
우리는 이렇게 멸망할 수 없어, 살아남아야 해!
인간을 싸고도는 너희는 전부 세계의 배신자라고!
 
조 원필:인간도 요괴도 결국 한 세계의 주민인데, 척을 질 필요 있어?
 
이채:웃기지 마. 조원필,
 
연나기:(무슨 소리야, 이게⋯⋯. 혼란스럽지만 정신을 차려보려 애쓴다.)
 
이채:너도 이제 진실을 알고 있잖아?
이계는 틀렸어. 멸망을 막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인계의 주민을 이계로 보내고 우리가 인계를 차지하는 것 외엔 없다는 거,
알고 있잖아!!!
 
조 원필:그럴 수는 없어,
그들을 우리 대신 희생양으로 쓸 수는….
 
이채:넌 우리보다 인간이 소중한 거지?
 
조 원필:……아니야, 단지 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이채:말은 그렇게 해도 역시 나를 방해할 생각이구나.
지난 이틀간 널 관찰했어!
넌 이계의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긴커녕, 인간이랑 붙어 서 시시덕거렸지.
‘선생님’의 피를 이은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니?
어쩌나, 그 앤 지금쯤 내가 파둔 함정에 걸려서 널 의심하고 있을걸.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그때 한 번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이채:신목의 수호자인 널 대체할 자는 없으니 여태 살려두었는데, 결국에는.
이게 다 인간 때문이야, 인간이 널 망쳤어.
 
조 원필:이채, 이계로 돌아가자.
다시 방법을 잘 찾아보면 어떻게든.
 
이채: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이제 상관없어.
너 같은 거, 인간들 랑 같이 사라져버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둘러싼 검은 안개의 장벽이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연나기 역시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넘어질 뻔합니다.
 
무언가 ‘열려선 안 될 문’이 억지로 열리는 듯한 소리와
 
조원필의 다급한 외침이 들립니다.
 
조 원필:그만둬!!
 
회색 연기가 뭉게뭉게 퍼져나옵니다.
 
화재가 아닙니다.
 
해골처럼 비쩍 마른 몸체, 번들거리는 표면,
 
어떤 생명체의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웁니다.
 
연나기는 인간의 근본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불리우는 존재가 소환되었단 사실을 깨닫습니다.
 
연나기:저게 뭐야⋯⋯?
 
 ✷ 이성 1/1D3 판정 ✷ 
 
연나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채라고 불린 요괴는 소리 높여 웃으며 조원필에게 삿대질합니다.
 
이채:이대로 너는 이곳에서 죽는 거야.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간들이랑 같이!
 
그러나, 이채의 기세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연나기를 등지고 선 괴물은
 
그대로 아가리를 벌려 단숨에 이채를 집어삼킵니다.
 
아작, 아작, 아드득,
 
생살과 뼈를 씹는 기이한 소음과 함께
 
귀를 찢는 비명이 소각장에 울려 퍼집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연나기:⋯⋯?! (아니, 저게 맞는 거야?!)
 
 ✷ 이성 1/1D3 판정 ✷ 
 
연나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뒤틀린 팔과 다리가 완전히 삼켜진 그때,
 
무심코 뒤를 돌아본 조원필과 연나기의 눈이 마주칩니다.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들은 건지,
 
조원필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 같지만,
 
대화하며 미적거릴 시간은 없습니다.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조원필은 연나기의 손을 잡고 산으로 달려갑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축제로 인해 사람이 많이 모여든 학교 중심부로
 
괴물이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상상도 못 할 만큼 거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테니까요.
 
뒤이어 굉장한 속도로 괴물이 쫓아옵니다.
 
연나기:조원필, 너⋯⋯ 괜찮아⋯⋯?!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그거 하나 묻고 싶었던지⋯⋯ 뱉는다.)
 
조원필이 품에서 방울을 꺼내자,
 
 
딸랑,
 
낭랑한 소리가 울립니다.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이기라도 한 듯,
 
괴물은 몸을 꿈틀거리며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었네요.
 
산 중턱에서 잠시 멈춘 조원필은
 
숨을 고르다 긴박하게 입을 뗍니다.
 
조 원필:잘들어, 연나기.
우린 사냥개에게 ‘인식’ 당했어.
 
연나기:인식⋯⋯?
 
조 원필:사냥개는 집요해서 우릴 잡아먹을 때까지 쫓아올 거야, 그게 다른 세계라도 말이야.
....하지만, 도망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이채가 먹히는 사이 내가 빠르게 사냥개의 감각에 주문을 걸어두었어.
근처에 있던 우리를 쫓아오고 있지만,
완벽하게 인식한 건 아니란 뜻이지.
내 말 이해하고 있어?
 
연나기:⋯⋯대충 이해했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인다.) 그럼⋯⋯ 어디로 도망쳐?
 
조 원필:사냥개를 쫓아내자. 우리한테서 멀어지면 자동으로 인식이 풀릴 거야.
인계에서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고 사냥개를 멀리 떠나보낼 방법은 없으니,..
신목을 이용할까 해.
내가 문을 열 테니, 사냥개를 신목 쪽으로 유인해줄래?
 
연나기:(비현실적인 상황에 되려 침착해졌다.) 알겠어. 어제 거기로 달리면 되지?
문을 열어도⋯⋯ 네가 잘못되는 일은 없는 거지?
 
조 원필:..맞아.
넌, 잘못되는 일 없어.
내가 그렇게 할 거야.
 
연나기:아니, 너는⋯⋯!
 
조 원필:위험에 빠뜨려서 미안해. 부디, 나를 믿고 한 번만 도와줄래?
 
그렇게 말하며 조원필은 연나기에게 손을 내밉니다.
 
조 원필:나도, 살 거야.
......약속했잖아. 이계로 초대한다고.
 
연나기:⋯⋯ (내민 손은 잡는다. 선택지가 없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 손은 긴장으로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손은 굳세게 연나기의 손을 맞잡습니다.
 
당신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살결을 타고 느껴집니다.
 
곧이어, 사냥개에게 걸린 속박의 주문이 풀립니다.
 
조 원필:연나기, 뛰어!
 
그와 동시에 조원필의 작전이 개시됩니다.
 
조원필은 동물로 변해 잽싸게 나무를 타고
 
가지와 가지 사이를 뛰어넘어
 
먼저 신목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연나기:(뛴다. 길은 네게 말했듯 잘 찾는 편이었으므로, 한 번 다녀온 산을 다시 타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달린다.)
 
발이 느린 연나기만 홀로 사냥개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길은 험하고 체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연 미끼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요?
 
 ✷ 민첩 판정 ✷ 
 
연나기: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재빠르게 돌과 수풀,
 
그루터기를 뛰어넘어 앞으로 달려갑니다.
 
뒤에서부터 기이한 울부짖음이 빠르게 다가오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습니다.
 
무조건 달려야 합니다.
 
조원필은 제대로 신목으로 간 게 맞겠죠?
 
만약 작전이 전부 가짜라면, 연나기를 속인 것뿐이라면,
 
조원필 혼자 도망친 거라면,
 
연나기는 정말 괴물에게 잡아먹힐 텐데요.
 
문득 불안이 엄습합니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연나기와 괴물 사이의 간격은 줄어들긴커녕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코스를 바꿔서 달려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길이 세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 행운 판정 ✷ 
 
연나기:멍청아, 느려-!!!! (잡생각 따위 할 겨를이 없다. 일단 달리자고-! 덩치가 작다는 건 각속도가 빠르다는 걸 의미하니까. 달리다 나무 옆에서 빠르게 꺾는다.)
운
기준치: 18/9/3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연나기는 갑자기 방향을 전환해 왼쪽으로 몸을 던집니다.
 
하지만, 사냥개는 그것조차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왼쪽으로 몸을 틀어 달려갑니다.
 
간격은 오히려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렇게 연나기는 넘어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자세로 계속해서 달립니다.
 
한계는 예전에 돌파했습니다.
 
이렇게 쉴 틈 없이 달려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죠?
 
목숨이 걸리니,
 
연나기:으아아아!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연나기!)
 
여태까지의 달리기 기록을 전부 갈아치우는 것 같습니다.
 
산소 공급이 원활히 되지 않자,
 
머리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 행운 판정 ✷ 
 
연나기:
운
기준치: 18/9/3
굴림: 28
판정결과: 실패
 
연나기의 눈앞에 구덩이가 보입니다.
 
피할 겨를도 없이,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집니다.
 
사냥개 역시 같이 굴러떨어집니다.
 
허겁지겁 손과 발을 써서 벗어나지만,
 
어느 틈엔가 발톱에 긁혔습니다.
 
 
(HP –1D3)
 
연나기:
rolling 1d3
(
1
 
)
 
=
1
 
나뭇가지가 팔을 긁고, 신발이 벗겨지기 직전입니다.
 
손등으로 땀을 닦아내자,
 
눈앞이 한결 또렷하게 보입니다.
 
아, 익숙한 인영이 보입니다.
 
연나기는 간신히 신목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가까스로지만요.
 
저 멀리에서 신목에 손을 짚고 있는 조원필이 보입니다.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립니다.
 
 ✷ 민첩 판정 ✷ 
 
연나기:
민첩
기준치: 67/33/13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오금이 저리고, 입안이 바짝바짝 탑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시야가 뿌옇고,
 
발바닥이 불타는 것 같습니다.
 
달리고 달려서,
 
나무에 부딪히기 직전,
 
연나기는 옆으로 몸을 날려 가까스로 피합니다.
 
그런 연나기를 조원필가 안정적으로 받아줍니다.
 
한 뼘 차이로 사냥개는 나무에 충돌하며 빨려 들어갑니다.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바람,
 
흩날리는 나뭇잎,
 
먼지와 벌레들까지 함께 삼켜집니다.
 
기운이 빠진 연나기까지 끌려가는 걸 조원필이 잡아줍니다.
 
보이지 않는 출입구는 달려드는 사냥개를 반갑게 맞이하고,
 
손님을 삼킨 마법의 문은 재빠르게 닫힙니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삽시간에 주변이 고요해집니다.
 
아, 이걸로 끝났습니다.
 
조원필이 안도감에 긴 한숨을 토해냅니다.
 
연나기:⋯⋯ ⋯⋯! (어버버, 말이 안 나온다. 애초에 숨이 너무 차서 쉬는 것 조차 버겁다.)
 
조 원필:하하,....하....
나기야.
......도와줘서 고마워.
 
조원필은 도와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며,
 
연나기의 눈을 봅니다.
 
아니, 눈이라기엔
 
그 안에 있는 본질을 읽어낸 것 같습니다.
 
조 원필:....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절차가 필요해.
 
연나기:(달리는 바람에 맞아 붉게 충혈된 눈이 널 본다.) 절차⋯⋯?
 
조 원필:(네 어깨 쓸어주며 입술 꾹 다물다가 가까스로 입을 연다.)
우리가 사냥개에게 인식당한 걸 기억하는 한, 언제든지 다시 쫓길 수 있거든.
그러니까, 그 부근의 모든 기억을 지워야 해.
....다시 만날 그 날까지만, 우리가 함께한 축제를 잊어줄래?
공평하게 나도 잊을 테니까, 너도 잊어.
대신 나는 훨씬 오래 기다렸으니, 조금만 더……
 
연나기:⋯⋯ (입 꾹 닫는다. 왜, 왜 이렇게 기분이⋯⋯.) 나, 아직⋯⋯ 하아, 하⋯⋯. (크게 공기 들이마신다. 말할 힘조차 없어 비축해야만 했다.) 난⋯⋯ 처음이었다고!
 
조 원필:... ......너도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인연이란게 무섭잖아.
우린 꼭 만나게 될거야.
그땐 내가 초대할게.
......섭섭하지 않게 배웅도 나갈게.
 
조 원필:우리가 서로를 잊는다 해도.. 좋아하는 감정은 그대로 남을거야.
넌 나에게 쉽게 잊혀질 사람은 아니니까.
 
연나기:하⋯⋯. (한계까지 다다라서, 벅차서 올라오는 우울감일 거다. 그래야만 한다. 제 셔츠 들어선 눈두덩이를 꾸욱 눌러 눈물이 흐르는 걸 간신히 막았다.) ⋯⋯잊기 싫어어.
 
조 원필:(네 말에 허겁지겁 끌어안는다.) 나도. 나도야, ....너한테 잊혀지기 싫어. 이제야 겨우 만났는데.. 겨우 찾았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애같이 굴기 싫은데..., 나도 너 보내기싫어.
네 첫 키스를 가져가서 미안해.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덜 아팠을까.) 내 감정은 절대 장난이 아니었어. 진심이야.
 
연나기:⋯⋯ 네가 하란대로 할게. (코 훌쩍거리며 네 품으로 파고든다.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킁, ⋯⋯네가 죽는 것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게 더 나아. 뭐든 죽는 것보다 더 큰 무게감을 지닌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말이 길어진다. 이건 이별을 직면하는 방법 중 하나이자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사과할 필요 없어⋯⋯! 좋아서 한 거야. 나도 장난이 아니었어. (고개 들어 시선 마주한다.)
 
조 원필:(마주한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고갤 숙여 네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다 떨어진다.) ....좋아해.
.....준비됐어?
 
연나기:(이 와중에 그 짧은 순간이 터무니없이 좋은 걸 보면, 아⋯⋯ 정말이지. 싫다. 헤어지기 싫은데⋯⋯) ⋯⋯준비됐어.
 
그는 연나기의 이마에 가볍게 검지를 톡 두드립니다.
 
 
딸랑,
 
명쾌한 방울 소리가 들립니다.
 
그와 함께 멀어지는 의식 속에 희미한 작별 인사가 스쳐 지나갑니다.
 
조 원필:이 방울의 사용법을 알려줄게.
내 힘의 원천은 그리움이야.
그러니까, 네가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게 되면…….
 
─────── CHAPTER 結末 ───────
 
연나기는 벤치 위에 앉아있습니다.
 
깜빡 졸았네요.
 
밤하늘은 새까맣습니다.
 
인파가 가득한 축제는 벌써 마무리에 접어들어,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렇죠, 시일제의 끝이라면 역시.
 
조원필:지금부터 불꽃놀이가 시작된대.
 
옆자리에 앉아있던,
 
모르는 얼굴의 사람이
 
당신의 옆에서 말을 겁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연나기는 이 사람의 어깨에 기댄 채로 졸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아는 사람이었던 걸까요?
 
모르겠어요,
 
어쩐지 머릿속이 안개가 가득 찬 것처럼 뿌옇습니다.
 
조금 더 이대로 있고 싶습니다.
 
조원필:누군가의 장난으로 불꽃이 전부 망가져서 이번 시일제의 불꽃놀이는 없을 뻔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검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고개를 꼿꼿하게 든 수많은 사람 사이,
 
단 한 사람만이 하늘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연나기의 옆에 앉은 낯선 이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연나기:⋯⋯왜 그렇게 봐? 곧 불꽃놀이 시작하겠어.
 
조원필:...그러면 네가 슬퍼할 것 같아서.
 
 
펑,
 
불꽃이 터집니다.
 
아, 정말로 아름다워요.
 
말 그대로 불이 이루어낸 꽃,
 
오색찬란한 그 꽃잎이 하나씩 떨어져 나갑니다.
 
떨어지는 불씨 하나가 연나기의 무릎 아래 내려앉습니다.
 
반딧불이입니다.
 
곳곳에 내려앉는 수많은,
 
알록달록한 색의 반딧불이를 보며
 
사람들이 감탄합니다.
 
이번 불꽃놀이는 정말 특별하네요.
 
연나기: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하곤 뒷머리 긁적거린다. 시선은 곧바로 불꽃이 수놓인 하늘을 향한다.) 예쁘네⋯⋯.
 
조원필:...그치?
이건, 너한테 주는 작별 선물이야.
 
연나기:(엥.) 우리 언제 봤는데?
 
그 사람은 그 말을 남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당신을 한참 바라봤으면서,
 
이젠 조금의 미련도 없는 듯 등을 돌려 멀어집니다.
 
외로운 기시감이 불현듯 당신을 덮쳐옵니다.
 
어떤 감정은 흩날리는 불씨가 되어
 
마음의 밑바닥에서 타들어 갑니다.
 
누군가가 그리운데,
 
그 누군가의 이름도,
 
얼굴도, 존재 여부조차 기억나질 않습니다.
 
연나기:(가슴께가 시큰거리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어째서일까요,
 
오늘 처음 보는 사람임이 분명한데,
 
꼭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 헤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생소하고도 익숙한 이별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별의 폭발.
 
허전한 마음을 뒤덮는 오색찬란한 하늘의 불꽃놀이,
 
죽은 별은 꽃이 되어 부서집니다.
 
하늘에 새겨진 별의 무덤과
 
그곳에 바쳐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그 눈부심에 만월은 빛을 잃고 가려집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세계에는 달이 없다고 했습니다.
 
달이 없는 그 세계에 떨어지면 이런 기분일까요.
 
언젠가 연나기,
 
당신을 둘러싼 모든 일상과 멀어지는 기이한 곳에 찾아간다면,
 
이런 축축하고 무거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걸까요.
 
달이 없는 곳에도 사람이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면,
 
제법 멋진 곳일지도 모릅니다.
 
특이한 괴물이 잔뜩 있거나,
 
이상한 음식이 제공되더라도,
 
그곳에서 즐기는 축제나 불꽃놀이는 특별할지도 모르죠.
 
어떤 기억이 물에 젖은 솜처럼 가라앉는 와중에,
 
누군가의 멀어지는 등과 하늘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만
 
당신의 눈에 선명하게 각인됩니다.
 
축제의 마지막 불꽃은 재회의 상징,
 
굳건한 지표로,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함께한 사람들은 만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다시 만난다고 합니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사람도 분명 같은 불꽃을 봤을 거라고,
 
연나기는 영문 모를 확신을 느낍니다.
 
달은 분명히 있습니다.
 
당신이 눈에 담은,
 
■■의 눈동자에 담겨있던 달은,
 
우리가 함께 본 그날의 만월은…….
 
잠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사흘간 연나기는 줄곧 혼자였잖아요?
 
혼자 일을 하고,
 
혼자 연극을 보고,
 
혼자 바보같이 땅을 굴러서 다리를 다치고,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도록 구르기만 했네요.
 
아, 정말이지. 시시하고 지루한 문화제였습니다.
 
여기는 지구, 평범한 인계(⼈界),
 
갑작스럽게 팔천구백 개의 다리를 가진
 
뱀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인어, 좀비, 식인 괴물, 외계인 역시
 
연나기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상식의 선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됩니다.
 
이곳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무료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당신의 눈앞에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거예요.
 
분명히 말이죠,
 
찾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답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이 빛을 따라와.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줄게.
 
 
분명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 거야.
 
재회를 약속하며,
 
부디, 그날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당신에게 찾아올 인연의 미래를 위하여.
 
이것은 어떤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
 
또한, 하나의 제안입니다.
 
 
ED. 9월의 끝에서
 
연나기, 조원필 생환
 
연나기는 인계에 남고, 조원필은 이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연나기가 지나온 과거를, 혹은 앞으로 겪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바꾸시겠습니까?
 
연나기:바꿀 거야. 그게 더 나은 과거를,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무조건.
 
그리고 다시,
 
10월 눈을 떴을 때는,
 
완전히 낯선 곳입니다.
 
신목 주변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요?
 
거대한 짐승이 짓밟고 지나간 것처럼,
 
주위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위엄있게 자리를 지키던 신목조차
 
반 쯤 몸이 꺾여 있습니다.
 
연나기:⋯⋯여긴?
 
폐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조각난 파편들 속에서….
 
조 원필:……선생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조원필의 목소리입니다.
 
아, 끔찍한 지진과 정체 모를 괴물들 속에서,
 
부디 그가 살아 있기만을 얼마나 바랐던가요.
 
조원필에게 전할 말이 많습니다.
 
나기를 속인 사실에 화를 낼 수도,
 
간신히 만났다는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려 버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기가 조원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면, ...
 
폐허에 등을 대고 비스듬하게 기대앉은 조원필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원필은,
 
짐승에게 뜯긴 것처럼, 왼쪽 팔이 없습니다.
 
 ✷ 이성 (0/1D3) 판정 ✷ 
 
연나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3
(
1
 
)
 
=
1
 
끝도 없이 흐르는 붉은 피 속에서,
 
조원필이 잠길 듯 기운 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피로 그려진 원 안에서,
 
조원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연나기를 봅니다.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응급처치도,
 
아니……
 
연나기가 사는 세계의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조원필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는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밟히는 것이 누군가의 시신인지,
 
폐허 더미의 일부인지 알 수 없습니다.
 
황량하고 끔찍한 이계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곤 조원필과 연나기 뿐입니다.
 
시야가 흐린 듯 눈을 깜빡이던 조원필은 나기를 보고…….
 
그저 웃어버립니다.
 
조 원필:.....연나기..
.... 제대로 잘 도망쳤는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오면 어떡해..
 
연나기:(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너로 인해 풍요로웠던 축제의 계절을 뒤로 하고 맞이한 겨울, 순백의 알갱이가 발 위를 침범할 때까지도 뭘 잊어버렸는지 전혀 몰랐다. 꽃가루가 휘날리는 봄, 무더운 여름에도 난 혼자였고, 다시 맞이한 가을에서 원인 모를 공허함을 느낄 뿐 뭐가 잘못됐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난⋯⋯) 조원필. (세 글자를 기억에 새기듯 부른다.)
(황량한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피가 묻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널 품에 안는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잊어버려서.
 
조 원필:연나기, 나기야.
......어서 돌아가야 해. 지금 열린 문이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을거야. 이계 사람들의 요력으로 열린 문이니까. 다들 구해보려고.. 돌아다녔는데, .......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
너까지 구하지 못하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얼굴 보러와줘서 고마워.
(온전한 손으로 나기 볼을 쓸어내린다. 그저 선생님과 닮아서. 그래서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렇지만.., 이젠.....)
날 다시 보면 욕할 줄 알았는데..
 
조 원필:......뭘 잊어버렸다는거야?
 
연나기:너, (덜덜 떨리는 손은 간신히 옷자락을 부여잡는 것으로 진정시킨다.) 네가 인계에 왔던⋯⋯ 그 날. 그 3일. (툭, 의식하지도 않은 채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흐른다.) 내 첫사랑⋯⋯.
⋯⋯너잖아.
 
연나기는 당신의 귓가에 속삭이던 가느다란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울의 사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던,
 
낯설고도 귀에 익은 목소리…….
 
지금의 당신은 방울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둥근 바람의 파형이 퍼져 나갑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당혹스러운 조원필의 목소리가
 
한 번 일그러지더니 휘말립니다.
 
가을 바람이 폐허가 된 세상을 부드럽게 뒤덮습니다.
 
맞아요, 연나기는 조원필과 만난 적 있습니다.
 
함께한 축제, 기억을 지우던 그 순간,
 
그리고 마지막의 선명한 불꽃놀이까지,
 
사라지던 그 뒷모습을 보며 느낀 기분까지.
 
어쩌면 얽히고 엉킨,
 
피를 타고 내려온 아주 오래된 과거까지도
 
생각해냈을지 모릅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멀어지던 그는
 
결국 당신에게 돌아올 거라 확신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인연입니다.
 
문득 연나기는 깨닫습니다.
 
조원필을 구하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방울이 계승되었다는 사실을요.
 
연나기와 조원필을 제외한 세계의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갑니다.
 
‘시대의 계승자’ 연나기의 특성, 시나리오 전용 기능치 <인연>이 추가됩니다.
 
<인연>의 기본 수치는 50이지만, 마력 1을 투자해 10씩 올릴 수 있습니다.
 
 ✷ 인연 판정 ✷ 
 
연나기:
인연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방울은 환한 빛을 내며 녹아내립니다.
 
금빛 구슬이 맞닿은 두 사람의 심장부에 스며듭니다.
 
스러진 세계를 밝히는 따뜻하고 고요한 힘,
 
그것은 인연입니다.
 
그 빛은 당신에게 속삭입니다.
 
인연과 운명의 끈에 대하여,
 
움켜쥔 손을 놓지 않는다면,
 
한없이 잡아당기고 잡아당겨
 
언젠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재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당신이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만큼
 
그 사람 역시 당신을 그리고 있다고,
 
세계를 절단하는 완전한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 원필:......나기야.
내가 뭐랬어, 만날거라고.
우리 꼭,.. 만날 수 있다고 말했잖아.
네가 선생님이야.
내가 줄곧 기다리던 사람은 너라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기의 손을 꼭 붙잡고는 자기 입술에 가져다댄다.)
 
조 원필:보고싶었어...
 
연나기:(가슴 한 켠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큰거린다. 다만 공허를 남겼던 일전의 통증과는 달리, 비어 있던 자리가 빈틈없이 채워지며 새 살이 돋아나는 성장통과도 같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기다렸어⋯⋯? 네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줄 알았더라면 난 절대⋯⋯ 널 두고 가지 않았을 거야.
 
조 원필:.....선생님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서.
모두가 선생님이 날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나 하나는 널 기억해야할 것 같아서.
내 처음과 끝은 모두 너야.
....난 너 덕분에 채워진거야.
결국 내 목숨도 네가 구해줬네.
 
조 원필:지겹다고 밀어내도, 이젠 못 가.
난 네 거야.
 
연나기:(고개 여러 번 젓고) 네가 만든 거야. 인연의 끈을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제야 고개 들어 가까이서 시선 마주한다.)
⋯⋯단명종은 절대 감내할 수 없어. 돌고 돌아 만나는 인연의 소중함 같은 거⋯⋯. 늘, 더 오래 사는 쪽이 그리워해야 하니까.
난, 정말⋯⋯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그리워해 본 적이 없어. 다 네 덕분이야. (이어지는 말엔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에 볼 붉힌 채 고개 조금 숙였다.) 말 하는 건⋯⋯ 여전하네.
 
조 원필:그래도 이렇게 만나러 와주고. ....날 기억해줬구나. 이계에서도 널 잊지 못해서, 한참 망설이다 기억을 지웠어.
이제 너 혼자 두지 않을게.
......여전히 날 좋아해?
 
연나기: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했어. 난 너와 이어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안아줘. 기억이 다 돌아와 버려서⋯⋯ 이제 혼자 못 자.
 
조 원필:절대 안 떠나.
네가 부탁하면 언제든 안아줄 수 도 있고.. .
(틈 없이 끌어안는다. 나기야,....연나기. 왜 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선생님과 닮아서 잘해준 게 아니었어. 그냥 너니까. 너니까 기다렸던 거야..)
..전생의 너한테 괜히 질투하지 말라고. 네 전생을 합쳐 연나기 널 사랑하지만, 지금 제일 사랑하는 건 너야.
.....손 잡아줄래?
우리 같이 손 잡고, 나아가는거야.
 
연나기:(네가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빈틈없이 꽈악 겹쳐 잡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질투 안 했지, 바보야. (불만, 그러나 애정을 담아 읊조린 뒤 네 콧등에 가볍게 입술을 누른다.) 얼른 커야겠네. 이 몸은 아직 너무 어려서⋯⋯.
 
이계와 연이 닿는 건,
 
이게 마지막입니다.
 
당신은 조원필의 손을 잡고 신목 너머로 발을 내딛습니다.
 
방울이 스며든 가슴이 따뜻합니다.
 
여태까지 건너왔던 신목의 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연나기는 통로를 건너며 정신을 잃지 않습니다.
 
어둡고 컴컴한, 끝을 알 수 없이 긴 터널이 펼쳐집니다.
 
조 원필:이것 봐.
 
조원필의 목소리를 듣고 그 방향을 보면,
 
희미한 녹색 빛이 모여드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 둘 모여들던 빛은 이윽고 한 무리의 반딧불이 떼가 됩니다.
 
그들은 원을 그리며 당신을 따라옵니다.
 
그 빛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편안해,
 
이곳에 있던 많은 이들이 등을 켜고 당신을 배웅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안심해도 좋아요.
 
이 빛을 따라가면 분명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터널의 끝,
 
한점의 빛으로 가득 찬 입구가 보일 무렵 반딧불이는
 
하나씩 사라집니다.
 
연나기:길을 잃으면, 반딧불이를 따라가라고 했었지⋯⋯ (속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끈을 놓지 않은 건 우리, 그러나 네게로 인도한 것은 무수히 많은 빛의 무리다.)
 
고양이 요괴 타타는 야옹 울고,
 
여우 요괴 미호는 다정하게 투덜거리고,
 
아, 방금은 쿠라마 할멈의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계에서 보내는 인사입니다.
 
안녕,
 
안녕히.
 
신목 밖으로 마지막으로 내딛는 발걸음과 함께
 
수많은 목소리가 우글우글 메아리치다 흩어집니다.
 
희미한 풀잎 향조차 함께 멀어집니다.
 
시야에 어지러운 빛으로 들어차며 세계가 빙글 돌아갑니다.
 
넘어지기 전, 연나기의 어깨를 조원필이 잡아줍니다.
 
새까만 어둠과 적당히 찬 공기,
 
머나먼 곳에서 들리는 경적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아, 이곳은 인계입니다.
 
어둑한 학교 뒷산에
 
반딧불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뒤돌아보면,
 
신목이 있던 자리에는
 
평범한 나무 한 그루만이 우뚝 서 있습니다.
 
연나기:⋯⋯그러고 보니, 이젠 내가 너 먹여살려야 하네.
 
문득 당신은 직감합니다.
 
조 원필:하하, 내가 그래도 영감을 주지 않았어?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이계는 예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을 것이며,
 
결국에는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고요.
 
조 원필:그래도, 내가 없는 것보단 낫지~?
 
연나기:자꾸 당연한 말 할래?
 
이것은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결말입니다.
 
자, 다음 이야기를 적는 건 당신의 소임입니다.
 
작은 노트에 지금까지의,
 
혹은 미래의 일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것은 머나먼 훗날,
 
이계로 발걸음을 내디딜
 
또 다른 당신에게 전해주는 편지가 되어줄 거예요.
 
끊어지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엉키더라도 이어지는 이야기.
 
고작 하나의 끈이 매듭지어졌을 뿐,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다시 만납시다.
 
그날은 우리들의 축제가 될 거예요.
 
 
ED.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연나기 생환, 조원필 구제 생환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주세요.
 
시나리오를 떠난 이야기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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